상장사들의 자사주(自社株) 매입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 기업들이 여유자금을 투자에 돌려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보다는 이처럼 자사주를 사들이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자사주 매입 증가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올들어 순매입 규모만 6조2539억원에 이른다. 작년 전체실적의 3.2배에 달하고 사상최대를 기록했던 2003년 실적도 7000억원이나 웃돈다.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대거 매입하는 이유는 주가관리와 경영권 방어 등 두 가지로 크게 축약할 수 있다. 주가관리는 자본시장 개방 확대와 함께 본격화된 것으로 외국계 펀드를 비롯한 주주들의 입김이 강화된 게 주요 배경이다. 최근 수년 사이 배당금 지급규모가 급팽창한 점을 봐도 상장사들이 주주들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는 선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최대 요인은 역시 경영권 방어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주식 보유비중이 40%를 오르내리면서 상장사들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소버린에 공격받은 SK그룹이나 아이칸에 휘둘린 KT&G의 사례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리는 기업들이 삼성전자 SK㈜ 등 외국인지분율이 높은 업체들인 것도 이런 점을 입증해준다.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選擇)이라는 뜻에 다름아니다.

문제는 자사주 매입 열풍이 나라 경제를 살리는데는 하등 도움될 게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여유자금을 활용해 투자를 해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다. 또 그래야 돈이 돌고, 소비가 살아나고, 일자리도 생기게 마련이다. 기업들이 자사주매입 같은 비생산적 분야에 과도(過度)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황금주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제도 같은 경영권방어장치들이 시급히 마련돼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기업투자는 부진하기 짝이 없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내년도 기업들의 투자증가율은 3.7%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여유자금을 주식 매수에 써버리는 상황이고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 까닭에 기업들을 적대적 M&A(인수합병)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투자를 늘리는 것이고, 나라경제를 회복시키는 지름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