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집단마케팅'이란 독특한 전략으로 중국시장 공략에 성공한 중소기업이 있어 화제다.

반도체칩 제조업체인 에이엠아씨(AMIC·대표 서충모)는 중소기업으로서는 해내기 힘든 중국의 거대기업 납품권을 집단마케팅이란 색다른 전략으로 연간 700억원 규모의 실리콘액정(LCOS) 패널을 중국 HDTV 생산업체에 5년간 공급키로 하는 계약을 따냈다.

이 회사가 중국의 대기업그룹인 하이신과 스카이워드 등에 패널을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은 의외로 간단한 전략이었다.

이 회사 손관음배 회장은 중국의 거대기업을 찾아가 AMIC의 첨단기술을 설명해 고객으로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들 HDTV 관련기업들이 속해있는 이익집단인 중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먼저 중국 상무부에 근무하던 한국통인 시오지춘씨를 중국 현지법인장으로 영입하고 한국기업으로서는 가입할 수 없는 중국측 협회 가입을 서둘렀다.

이를 위해 AMIC가 중국 쑤저우에 설립한 전자부품 공장의 사업등록에 TV부품을 포함시켰다.

이를 계기로 중국디스플레이협회에 가입하고 중국 대형TV 생산업체들의 조직인 LCOS연맹(15개사)에도 참여하게 됐다.

이처럼 중국측 내부의 조직에 가입하자 각종 주요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디스플레이협회 토론회에서 AMIC는 회원들에게 자사의 LCOS기술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LCOS기술을 꼼꼼히 설명했고 이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왔던 중국 기업인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수출의 도화선으로 작용한 것.

하이신 등 중국 기업들은 손 회장에게 "현재 한국은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LCD에 치중하는데 어떻게 LCOS를 개발했느냐"며 질문을 퍼부었다.

이처럼 중국측이 LCOS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LCOS가 LCD보다 한단계 위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 대기업들의 전략은 LCD TV로서는 일본 및 한국업체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에 LCOS TV를 만들어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에 LCOS 패널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앞다퉈 납품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어 AMIC는 단독으로 지난달 베이징에서 중국의 10여개 대형 TV 생산업체들을 모아놓고 제품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 대기업 사장들은 LCD 화면보다 훨씬 정교하고 입체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AMIC의 제품을 보자 자신들의 눈을 믿지 않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자 중국디스플레이협회의 자오한딩 비서장은 "우리가 직접 AMIC를 방문해 공장과 연구소를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비서장의 제안에 중국 최대의 대형TV 생산업체인 하이신 스카이워드 액토디지털 등 10개 기업들은 한국방문을 동의했고 최근 나흘간의 일정으로 AMIC 평택 공장을 둘러봤다.

그런 후 중국 기업들은 총 300만대의 HDTV에 들어갈 LCOS패널을 주문했다.

중국측 관계자는 "중국이 이처럼 많은 분량의 HDTV용 패널을 주문한 것은 2008년까지 중국 정부가 베이징올림픽 경기를 중계할 때 HDTV를 통해 전체 국민이 시청할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서충모 AMIC 대표는 "중소기업이 중국의 거대시장을 이렇게 뚫을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협회 가입을 통한 집단마케팅 전략을 추진한 덕분"이라며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중국의 텃세를 넘으려면 중국기업들이 동류의식을 갖도록 중국내 조직에 들어가 마케팅을 펴는 전략도 생각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자오한딩 비서장은 "중국기업이 AMIC의 HDTV패널을 주문한 것은 이 회사의 패널 제조 기술이 단연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에선 이미 대학 안에 LCOS 관련학과를 둘 만큼 다양한 연구를 해왔으나 아직 실용제품을 만들지 못했는데 한국의 중소기업이 이의 제조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LCOS 패널을 채용해 HDTV를 만드는 기업은 일본의 소니뿐이다.

LCOS 패널은 실리콘 위에 액정을 가공하는 것으로 화소의 틈새를 없애주는데다 측면에서 봐도 TV화면이 잘 보이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2003년에 세계 최초로 실용화된 이 기술은 LCD보다 성능이 앞서면서도 생산단가가 낮아 앞으로 대형화면에서 LCD를 대체하는 기술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AMIC의 예에서 보듯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중소기업들은 개별마케팅보다는 중국의 이익단체에 가입해 영업에 활용하는 집단마케팅을 중국시장 공략의 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해볼 만하다.

이치구 한국경제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