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시계는 1mm 범위까지 디자인해야만 하는 섬세한 제품.예를 들어 초침이 조금만 '무거워도' 시계 태엽이 감당하지 못해 멈춰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다 보니 부품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디자인이 불가능하다.

한 실장이 "시계 디자이너는 시계를 직접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손목 시계는 30여개 부품으로 이뤄진다.

한 실장은 디자이너도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부품 공장을 쫓아다니면서 '현장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한 실장도 '초짜' 디자이너 시절에는 디자인 연습을 하기보다 시계 부품 공장에 뛰어다니느라 바빴다고 한다.

한 실장은 '포체'가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 기둥 역할을 했다.

포체를 생산하는 아동산업은 원래 다른 유명 시계 브랜드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였다.

그러다가 1992년 한 실장이 입사하면서 독자적인 브랜드 개발에 나선 것.처음 '포체'가 탄생했을 땐 낮은 브랜드 인지도 탓에 억울한 일을 당하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게 디자인을 도용당하는 것이다.

해외 전시회에 출품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 회사가 유사 제품을 내놓는 식이다.

점점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급변하고 있는 것도 후발 주자에겐 큰 부담이 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 '예쁘고 멋진 것'을 추구하는 게 디자인의 흐름이었는데 포체를 만들 무렵부터는 디자인이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가 '젊음과 혁신'을 의미하고 '프라다'가 실용적인 명품을 의미하듯이 포체 또한 고유의 아이콘(상징물)을 만들어야 했던 것.

다음은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디자인 컨셉트를 잡는 것은 한순간에 나오는 게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시장 조사를 통해 사람들이 요즘 어떤 모습으로 자신이 표현되기를 원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포체의 디자인 컨셉트는 2003년 송혜교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큰 반향을 얻는다.

포체의 여성스럽고 귀여운 디자인이 송혜교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진 것.그 후 포체의 매출은 두 배나 뜀박질한다.

포체가 대박을 터뜨리기 전까지 한 실장은 우여곡절이 많은 디자이너 인생을 살았다.

우리나라 시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업체들끼리의 통폐합이 수시로 일어나 직장을 옮긴 것만 네 번.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국내 브랜드에 대한 고객들의 '편견'이었다.

"손목 시계 디자인은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복잡한 만큼 시계의 등급을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이 많다는 얘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요소들을 비교해 보는 것 없이 무조건 해외 명품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는 몇 달 전 명품 시계 사기 사건도 사람들의 해외 제품에 대한 맹신이 불러일으킨 부작용이라고 믿고 있다.

한 실장도 시계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손목 시계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막연히 자동차나 가전 제품 등을 디자인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수의 추천으로 우연찮게 들어간 시계 회사에서 그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됐다고.그는 우리나라 정부가 시계 산업을 과소 평가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스위스 시계 업체로부터 도움을 받듯이 시계 산업은 실용 과학의 가장 기초적인 부문이 될 수 있어서다.

"과거 1980년대에 시계 부품을 거래하던 업체의 대부분이 지금은 휴대폰 부품을 생산하고 있어요.

역설적이지만 시계 산업이 정밀 산업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죠."

그도 다른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손으로 명품 시계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글=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