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중국에 이은 또 다른 황금 투자처로 부상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많은 외국 기업이 베트남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기회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는 법.베트남 투자에는 수많은 함정이 놓여 있다는 게 현지 비즈니스맨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먼 복잡한 행정·법률체계,관료의 부정부패,사회간접자본(SOC) 취약,계약 준수 관념 결여 등이 외국 기업을 옥죄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ABN암로 분쟁'은 이 같은 '베트남 리스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위는 이렇다.

올해 초 베트남 최대 은행인 인터컴뱅크의 한 직원이 정부 허가 없이 외환투기를 해 54억달러의 손해를 봤다.

네덜란드에 투자한 ABN암로 은행을 통해 이뤄진 거래였다.

베트남 정부는 인터컴뱅크 직원뿐만 아니라 ABN암로의 베트남지사 직원 2명을 체포,재판 없이 감옥에 가두었다.

'국가 재산을 침해한 사람은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국내법이 근거였다.

ABN암로가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이 회사는 '정상적인 국제거래에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맞서고 있다.

재판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

ABN암로 직원은 지난 3월 이후 철창 신세를 지고 있다.

'ABN암로가 손실을 배상해야 직원을 풀어주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입장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한국 기업이라고 해서 '베트남 리스크'를 피해갈 수는 없다.

호찌민에서 부동산을 개발하고 있는 P씨.그는 1년 반째 부동산 개발 승인을 따내기 위해 관공서를 들락거리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제출한 서류가 1t트럭 한 대 분량은 된다"며 "그들은 처음에는 호의적이다가도 땅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면 승인을 무작정 연기한다"고 말했다.

P씨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승인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베트남의 주먹구구식 행정이 투자자를 내몰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부정부패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하노이에 진출한 국내 한 컨설팅 업체는 최근 베트남 가전 업체인 J사의 구조조정 자문을 맡았다 포기해야 했다.

J사는 1980년 한때 업계에서 잘 나가는 업체였으나 지금은 하노이 시내의 빌딩 임대수익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무늬만 대기업'이었다.

"빌딩 절반에 해당하는 6개층 임대료가 수년째 들어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J사는 법원에 제소했지만 번번이 졌지요.

임대한 사람이 군 출신 고위 인사였기에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입김이 강한 베트남의 특성상 '음성 로비'는 피할 수 없는 비즈니스 일과가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소기업 및 개인 사업자들은 베트남 파트너의 부당 상거래로 피해를 입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파트너의 배신이다.

베트남은 일부 서비스 분야에서 외국인의 단독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를 피해 베트남 현지인과 합작하거나,또는 직원 이름으로 사업체를 등록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하노이에서 한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K씨는 "일부 베트남인들은 한국인 파트너의 각종 약점을 잡아 사업에서 손을 떼게 만든다"며 "차명 등록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에 업체를 고스란히 빼앗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노이에서는 '5000만원을 갖고 오면 반 년,1억원을 갖고 오면 1년 만에 보따리를 싼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낙후한 SOC시설은 또 다른 걸림돌이다.

비좁은 도로와 낡은 철로,부족한 항만 탓에 산업의 '혈관'인 물류 시스템은 언제나 마비 상태다.

열차는 협궤인 데다 단선. 호찌민시에서 1600km 떨어진 하노이를 열차로 갈 경우 36시간이 걸린다.

하노이~호찌민 간 도로 역시 편도 1차로에 불과,이용하기 불편하다.

물류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주요 공장마저 이따금 '단전' 통지를 받을 정도로 전력 사정도 형편 없다.

이 밖에 원·부자재 조달난,오토바이 매연으로 인한 심각한 도시 환경오염,계약 이행에 대한 의식 결여 등도 베트남 비즈니스를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이성훈 KOTRA 호찌민 무역관 관장은 "베트남이 기회의 땅임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묻지마식 투자로는 결코 그 기회를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 비즈니스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위험 요소에 대한 철저한 사전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