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샐러리맨으로 일하다 '불혹'의 나이에 해외에서 기업가로 새 인생을 시작해 13년 만에 34개 계열사에 총 매출 2억2000만달러(2065억원) 규모의 굴지 그룹으로 성장시킨 한국인이 주목받고 있다.

홍콩 30대 물류회사에 드는 종합물류사인 코치나그룹의 박봉철 회장(53)이 주인공.그는 지난달 인케(INKE·한민족 글로벌 벤처네트워크) 4대 총의장으로 뽑혀 한국에 돌아와 국내 벤처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한항공 홍콩지점 화물판매 과장으로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걷던 박 회장의 인생이 바뀐 것은 1993년.4년간 홍콩지점 파견 근무를 끝내고 본사로부터 복귀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홍콩에서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대책 없이 회사에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이듬해 4월 홍콩 물류회사인 프리츠로지스틱스(미국 UPS가 인수)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스카우트됐지만 6개월 만에 그것도 때려쳤다.

"연봉 1억2000만원,자택과 차량 제공 등 꽤 괜찮은 조건이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지요. 내 물류회사를 차리겠다는 생각이었고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지요." 그해 10월 박 회장은 퇴직금 1600만원을 밑천으로 '코치나로지스틱스'를 세웠다.

홍콩 변두리 지하 2층에 5평짜리 사무실과 여직원 1명이 전부였지만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홍콩에서 나름대로 '인맥'을 쌓아놓았지만 조그만 회사에 흔쾌히 일을 맡기지는 않았던 것.박 회장은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틈새 시장 공략에 나섰다.

눈에 띄는 첫 성과는 95년 항공화물 운송업체인 페덱스와 DHL에서 수주한 소량화물 운송.당시 페덱스와 DHL은 한국으로 가는 특송화물 비행기를 갖고 있지 않아 캐세이퍼시픽항공과 위탁계약을 맺고 서류 등 소량화물을 한국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했다.

박 회장은 비행 일정과 가격 등에서 훨씬 나은 조건을 갖고 있는 대한항공을 끌어들여 이들 회사에 제안,소량화물 운송 사업권을 따냈다.

이에 따라 운영비 등으로 매월 1000만원 정도 손실을 내던 회사 실적은 단숨에 흑자로 돌아섰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박 회장 특유의 성품도 회사 성장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대한항공 근무 시절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LG전자 본사 출장 직원들에게 술을 산 적이 있었다.

"항공운송은 물류회사를 통하기 때문에 항공사와 제조업체 간 이해관계가 전혀 없었어요.

그날 만남의 분위기가 그냥 좋아 제가 계산을 했지요.

4년이 지난 97년 LG전자를 상대로 세일즈를 하러 서울 여의도 본사로 찾아갔는데 수출담당 부장이 그 자리에 있던 분이더군요." 덕분에 코치나로지스틱스는 그전까지 일본 물류회사가 맡아온 LG전자의 제품 운송을 한꺼번에 맡을 수 있었다.

코치나로지스틱스는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고통을 겪은 외환위기 시절 오히려 급성장했다.

"외환위기를 맞아 고국 기업들은 중국 사업을 축소하는 상황이었지만 중국에 매년 2∼3개의 지점을 세우는 공격적인 전략을 폈습니다." 94년 사무실 1곳에 불과했던 코치나로지스틱스는 지금은 중국에만 14개 지점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 일본 대만 태국 베트남 등에도 진출,현재 11개 국가에 28개 지점을 갖고 있는 거대 물류사로 성장했다.

한해 다루는 항공수출입 물량은 3만1390t,해운 수출입 물량은 4만12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에 이른다.

지난해 매출액은 1억달러.

코치나로지스틱스는 2003년 SK㈜가 운영하던 PS(폴리스티렌) 생산업체인 홍콩석유화학을 인수하며 새 사업에 뛰어들었다.

박 회장은 "예전부터 기간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홍콩석유화학의 물류을 맡고 이 회사 공장에 들렀다 우연히 기업 인수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공장에서 SK 본사 연락처를 알게 되고 '홍콩석유화학을 사고 싶습니다.

매각하실 의사가 없는지요'라고 손으로 쓴 문서를 팩스로 보냈다는 것. SK는 황당했는지 한 달 뒤쯤 답변을 보내왔고 어쨌든 2년여 만에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제 코치나그룹은 코치나로지스틱스 본사 및 지점 29개사를 비롯 GCA코리아 등 항공사 판매대리점 4개사,홍콩석유화학 등 총 34개사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코치나그룹은 내년이나 내후년을 목표로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을 추진 중이다.

그는 "증시 상장을 앞두고 해외 굴지의 기업들로부터 여러 제안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엔 일본의 한 대기업이 코치나그룹에 전략적 투자 의사를 타진했다.

박 회장은 이와 관련,"아직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단정하긴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제휴가 이뤄질 경우 상장기업에 대한 자본 투자로 일본 대기업은 재무적 이익을 누리는 한편 코치나그룹은 일본 대기업의 수출 물량을 도맡게 돼 회사 전체 물동량이 늘어나는 윈윈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치나그룹 상장을 통해 끌어들인 자금으로 미국과 유럽,중동 지역에 있는 중소형 물류사를 인수해 페덱스나 DHL과 같은 글로벌 물류회사로 키우는 게 꿈입니다."

글=임상택·사진=김병언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