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경제 수도 호찌민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가량을 달려 도착한 동나이.밤 11시 논트레치공단의 양모 원단 제조업체인 대원텍스타일 공장에 들어서니 열기가 후끈하다.

섬유기계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베트남 직원들의 눈빛이 또렷하다.

하루 24시간을 풀가동해도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기에 벅차다는 게 전기삼 법인장의 설명이다.

"일본과 유럽 등에서 밀려오는 바이어와 미팅을 하느라 다른 일은 제쳐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년 5월까지 주문이 모두 끝났습니다."

전 법인장은 "중국으로 가던 해외 바이어들이 베트남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회사가 조업을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전.매출이 이미 800만달러를 넘었고,현재 추세로 볼때 내년 1500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 법인장은 자신하고 있다.

임가공 섬유업계뿐만 아니다.

베트남은 지금 부동산 개발,금융,정보기술(IT),중기계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외국 바이어와 투자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호찌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베트남 경제를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던 중국의 상황과 비교한다.

중국은 WTO 가입을 계기로 수출이 매년 20~30%씩 늘고,외국인 직접투자(FDI)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서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달러로 국내에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고,건설 유통 금융 등 서비스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발전 경로를 베트남이 밟고 있다는 얘기다.

베트남 최대 컨설팅 업체인 인베스트컨설트그룹의 유엔 전 칸 호찌민본부 사장은 "WTO 가입을 계기로 베트남 경제도 폭발적 성장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호찌민에서 동나이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인텔 반도체공장 부지는 베트남의 'WTO 붐(Boom)'을 상징한다.

널찍한 공장부지로 나가니 군인 복장의 젊은이가 다가온다.

인텔 직원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그는 인텔 공장이 어디에 들어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눈에 보이는 그곳까지'라고 답했다.

인텔은 베트남 정부가 WTO 가입 승인을 받은 지난 7일 투자 규모를 3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3배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베트남을 아세안 전초기지로 키우겠다는 인텔의 전략과 WTO 가입에 따른 개방 의지를 보여주자는 베트남 정부의 뜻이 맞은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공략은 서방국가보다 더 공격적이다.

지난 5월 말 현재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누적 투자액(허가 기준)은 약 58억달러로 전체 베트남 투자의 10.8%에 달하고 있다.

대만 싱가포르 일본 등에 이은 4위다.

그러나 올 들어 10월 말까지 기간에는 7억7000만달러로 2위를 기록 했다.

동나이 논트레치공단의 교직물 가공 및 봉제 업체인 영텍스는 한국 기업이 중국과 베트남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이 회사는 5년 전 중국 저장(浙江)성에 2000만달러를 투자,공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공장 설립 1년여 만에 중국 투자 계획을 포기했다.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투자 요구에다 공장 직원들의 로열티를 감안한 결정이었다.

중국을 버린 이 회사의 선택은 베트남이었다.

"중국 투자 포기로 2000만달러를 날렸지만,지금 생각하면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으로 간 관련 업체들은 지금 중국의 원가 인상에 막혀 고사지경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반면 베트남은 안정적인 노사환경과 낮은 임금 등으로 매년 30% 안팎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고,품질 면에서도 중국보다 훨씬 앞서고 있습니다."(영텍스 한광섭 법인장)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투자는 이제 임가공 분야를 넘어 부동산 개발,금융,전자,IT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호찌민에서 진행 중인 건설 프로젝트의 절반은 한국인이 시행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개발 투자가 활발하다.

호찌민에서 주로 TV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하노이 북부에 프린터 생산단지 조성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캐논이 하노이 지역을 세계 3대 공급기지로 육성하면서 하노이 북부와 중국 광둥(廣東)성을 연결하는 '프린터 생산단지'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투자 결정이다.

이성훈 코트라 호찌민 관장은 "아세안 지역은 일본자본과 화교자본이 선점,우리 기업이 파고들 여지가 많지 않다"며 "그러나 베트남은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한 곳이어서 한국 기업이 시장을 먼저 장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WTO 가입으로 촉발한 외국 자본의 베트남 러시에서 한국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