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패스 이병구 회장(60)은 2003년 감기로 동네 병원에 갔다 별난 생각을 떠올렸다.

병원 복도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기관지 질환자들이 병원의 열악한 환풍 시스템에 노출돼 있는 모습을 보고 직접 공기청정기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이 회장은 "반도체 웨이퍼에 금박막을 고르게 씌워주는 공정을 환풍기 필터에 적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곧바로 회사에 돌아와 이 같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반도체 소재 제조업체인 네패스가 지난 5월 생활환경 분야에 진출하게 된 발단이다.

3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나노입자의 은을 입힌 살균필터를 개발한 것.네패스는 이 필터를 활용해 공기살균기를 비롯 항공기 및 자동차용 캐빈필터,수질정화기인 살균볼 등의 제품을 출시했다.

회사측은 네패스의 살균필터는 국가공인시험기관을 통해 황색포도상구균 레지오넬라균 곰팡이 등을 99% 살균시키는 능력을 검증받았다고 밝혔다.

기존 공기청정기가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항균 기능만 갖고 있는 데 비해 살균필터는 항균뿐만 아니라 세균까지 없애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네패스가 개발한 살균필터는 반도체 식각 공정에 사용하는 '스퍼터'(초박막증착) 방식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진공상태에서 반도체 웨이퍼에 전극을 넣어 골고루 금박막을 씌워주는 공법을 그대로 적용해 나노 입자의 은을 골고루 씌운 살균필터를 만들었다.

이 회장은 "기존 출시된 은나노 살균필터의 경우 은 입자를 붓으로 바르거나 스프레이로 뿌려 단위 면적당 입자 개수에 차이가 생기는 데다 제대로 입혀지지 않아 살균 효과가 크지 않았다"며 "세밀한 공정을 요구하는 반도체 공정을 채택해 과거 기술로는 실현할 수 없는 수준의 살균필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네패스는 최근 일본 구로메시에 있는 후생성 산하 난뇨병원에 3억원(30여대) 규모의 공기살균기 '실버가드'를 수출했다.

이 회장은 "통상 병원에선 공기 오염 가능성 등을 우려해 공기청정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 반해 이번 수출이 성사된 건 우리 회사 공기살균기가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해외에서 러브콜이 들어오자 이 회장의 얼굴 보기도 여간 힘들어진 게 아니다.

그는 지난달 20여일동안 살균필터를 홍보하기 위해 독일의 뮌헨과 슈투트가르트를 방문해 자동차 제조업체인 BMW와 비행기 생산업체인 에어버스 관계자들을 만난 데 이어 이달 중순께는 싱가포르로 일주일간 출장을 떠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최근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공공장소에서 어떻게 환풍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계약을 언급할 단계는 아니지만 세계적인 자동차 및 비행기 업체들이 잇따라 우리 제품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