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7대 그룹·29개 기업에 대해 중핵기업출총제를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 대해 재계는 "적어도 서너 개 상위 그룹에 대해서는 2중 3중의 족쇄를 채우겠다는 공정위의 의중이 드러났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내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데다 대선 정국을 앞에 둔 정치권의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공정위 안이 그대로 정부 안으로 채택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몇 개 그룹은 반드시 잡겠다(?)'

공정위 안에 따르면 중핵기업출총제의 적용 대상에 포함돼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기업은 삼성 현대차 SK 롯데 한화 두산 금호그룹 등 7개 대기업집단 소속 29개 기업이다. 여기에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현대·기아차 SK㈜ SK텔레콤 롯데쇼핑 한화 두산중공업 금호산업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중핵기업출총제는 적용 대상만 기업 집단(그룹)에서 개별 기업으로 바뀔 뿐 규제 방식이나 효과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특히 자산 2조원 이상 현대차그룹 5개 계열사들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출자 비율은 95.4%,삼성 8개 계열사들의 그룹 내 출자 비율은 85.0%에 각각 달해 규제를 완화한다는 명분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결국 중핵기업 출총제는 현행 출총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못한 채 기업들에 족쇄만 바꿔 채우는 셈이다.


○재계 "흥정하자는 게 아니다"

공정위 안이 알려지자 재계는 다시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건호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재계는 출총제를 두고 흥정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면서 출총제의 조건 없는 폐지를 재차 요구했다.

조 부회장은 "출총제를 사실상 없애지도 않고 거기에 더해 순환출자 규제까지 도입한다면 경제계로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정위가 출총제 문제와 관련해 재계뿐만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반발에 직면하자 한 단계 완화됐다고 하는 대책을 내놓은 것 같은데,이 문제를 두고 흥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재계의 소망"이라고 밝혔다.

조 부회장은 "일각에서 일부 대기업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문제삼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극히 일부분의 사례를 들어 투명 경영을 위해 애쓰는 대다수 대기업까지 싸잡아 규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안 통과는 불투명

공정위가 꺼내 든 마지막 카드가 정부안으로 확정될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재계도 재계이지만 재경부와 산자부 등 관련 부처 간 이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산자부부터 여전히 '강력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재경부 역시 공정위가 기존에 형성된 환상형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자고 요청하고 있는 지분 매각시 세제 혜택 등에 대해 '형평성 문제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를 통과하기는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간 입장이 다르고 당 내부에서도 목소리가 제각각이어서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기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는 국회에서 공정위의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도입+중핵기업 출총제 존속' 안에 찬성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무리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정부는 9일 재경부 산자부 공정위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한 뒤 오는 14일 대통령 주재 장관회의에서 현행 출총제 대안에 관한 정부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