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국내 대표 벤처투자사로 이름을 떨친 KTB네트워크는 요즘 들어 '벤처전문 투자사'라는 수식어가 어색하기만 하다.

지난해 전체 투자금액 2230억원 가운데 순수 벤처투자는 30%가량인 680억원에 그친데 이어 올 들어서도 9월까지 42%인 66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어서다.

그나마 '벤처투자'로 잡힌 것도 중국 등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가 대부분이다.

KTB는 이와 달리 기업구조조정(CRC)이나 사모펀드(PEF) 등 바이아웃(기업지분 인수해 경영참여를 통해 가치 높인 뒤 되파는 방식)투자 규모는 지난해 1550억원에 이어 올 들어서도 9월까지 930억원에 이르고 있다.

연말에는 대우건설 PEF 투자를 위해 3000억원을 추가 배정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100억원을 들고 10개 벤처기업에 투자를 할 경우 평균 2~3개 정도 살아나고 이들이 코스닥시장에 상장되면서 500% 이상 수익을 내 살아남지 못한 7~8개에 대한 투자액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장을 한다해도 수익률이 100% 남짓해 벤처투자만으로 도저히 수익을 못 낸다는 설명이다.

벤처투자 시장이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벤처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 벤처투자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한 까닭이다.

8일 벤처캐피털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중소기업 전문 투자펀드인 모태펀드를 통해 세 차례에 걸쳐 창업투자회사 펀드에 투입한 돈은 총 2050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창투사들이 올 들어 9월까지 벤처기업에 대해 신규로 투자한 금액은 4702억원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 수치는 작년 같은 기간 투자액인 4317억원보다 겨우 9% 정도 늘어나는데 그친 것. 특히 중소기업청이 집계한 올해 창투사들의 투자 계획 1조25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벤처펀드가 조성되면 1∼2년 사이 집중 투자가 이뤄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모태펀드 자금을 받은 대부분의 창투사들이 돈을 움켜쥐고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투자 대상인 비상장 벤처업체들의 경우 자금 공급과잉으로 투자 가격이 너무 많이 뛰어올랐는데 코스닥시장같은 투자회수 시장은 오히려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모태펀드를 통해 3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한 L창투사의 경우 1년2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은 겨우 70억원 선에 머물고 있다.

L사 관계자는 "투자 대상업체들이 돈 줄곳이 많아선지 배짱을 튕기는 데다 올 상반기 코스닥시장에 대한 우회상장 등에 대한 규제강화로 인수합병(M&A) 수요도 자취를 감춰 투자를 자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KTB네트워크 등 벤처투자회사들의 투자 형태도 바뀌고 있다. 순수 민간자금을 갖고 벤처투자를 하는 한국기술투자는 기존 벤처투자 위주로 하던 사업구조를 변경하기 위해 최근 전략사업팀을 신설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모태펀드 자금이 깔리면서 현재 벤처시장은 거품이 낀 상태"라며 "조직 개편을 통해 기관투자가들이 선호하는 CRC 등의 투자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RC협회 손진용 사무국장도 "기복이 심한 벤처투자에 비해 CRC투자는 연 26% 수준의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군인공제회 교원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이 꾸준히 입질을 하고 있다"며 "창투사들도 벤처투자에 대한 대체투자로 CRC겸업에 대한 문의를 최근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