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 완공될 슬로바키아 공장에서는 월 400유로(약 48만원)를 받는 근로자 3100명이 연간 30만대의 차량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기아차 광주공장에서는 이보다 월급을 훨씬 많이 받는 6000명이 1년에 30만대를 생산합니다."(기아자동차 임원)

국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를 극명하게 설명해 주는 말이다.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속속 해외로 옮기면서 해외 고용은 급증하고 국내 고용은 늘지 않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갈수록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어 결국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들이 생산 거점의 해외 이전 명분으로 글로벌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속사정은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 '밖으로 밖으로'

현대자동차는 오는 2008년까지 체코에 10억유로(1조2000억원)를 투자,연산 30만대의 완성차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현대차는 체코 공장에 3500명 이상의 현지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기아차는 지난달 21일(한국시간) 착공식을 가진 미국 조지아주 공장이 완공되면 2500여명의 현지 직원을 뽑기로 했다.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동반 진출 부품업체들의 채용 인원까지 합치면 조지아주 안에서만 4500명 이상에게 새 일자리를 제공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미국과 폴란드 등의 해외 공장 신·증설을 통해 상당수 해외 인력 채용에 나설 예정이다.

다른 기업들도 해외 투자에 적극적이다.

최근엔 자동차 전자에 이어 철강과 중공업 업체들까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 포스코는 120억달러를 투자,인도 오리사주에 일관 제철소를 지을 예정이고 삼성중공업은 중국 산둥성에 블록 공장을 착공했다.

한진중공업도 필리핀에 조선소를 세우고 있다.


○외국선 기업 '모시기 경쟁'

미국 앨라배마주는 현대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법까지 고쳐 210만평에 달하는 공장 부지를 사서 소유권을 내줬다.

부지 정지공사 비용 1250만달러를 부담했고 각종 세금 감면 등 파격적인 혜택을 줬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자동차업체를 붙들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주 정부가 발벗고 나선 것이다.

기아차 공장을 유치한 미국 조지아주 정부도 눈물 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공장 부지와 인프라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교육 훈련비 지원과 세금 감면을 통해 총 4억1000만달러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반면 국내에서 기업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거미줄같이 얽힌 각종 규제에 대립적인 노사 관계가 기업의 발목을 붙들고 있어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전국의 해외 진출 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응답 기업의 52.3%가 국내 투자를 포기하고 해외 투자를 단행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을 정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시장과 가까운 곳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그러나 고임금과 저생산성 구조로 인해 더 이상 국내 공장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본격화되기 전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국내 제조업계가 극심한 산업공동화 현상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