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후반기의 외교안보팀 `라인업'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외교장관에 내정된 송민순(宋旻淳) 청와대 안보실장이다.

북한 핵실험 국면에서 기존 외교안보팀 수장 전체가 물갈이 됐지만 송 실장만 말을 갈아타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외교안보 정책의 조정을 담당하는 안보실장으로서 북한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지만, 이번 인선은 그 만큼 그에 대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신뢰가 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송 실장은 참여정부 들어 승승장구한 케이스이다.

작년 1월 외교부 기획관리실장에서 차관보로 승진한 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거쳤고 1년 만에 2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장관급인 안보실장 자리를 꿰찼다.

송 실장은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안보실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통일ㆍ외교ㆍ국방장관 등이 참석하는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이끌며 실질적으로 외교안보정책을 이끌어왔다.

따라서 이번 인선에서 송 실장이 참모의 신분을 벗어나 보다 많은 재량권을 가진 외교장관으로 발탁된 것은 정부 외교안보팀에서의 그의 입지가 더욱 견고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정부 들어 외교안보팀은 팀 구성 멤버에 따라서 그 무게중심이 이동을 해왔다.

정치인 출신인 정동영(鄭東泳) 통일장관이 재임할 무렵에는 그가 외교안보팀 수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그는 지난해 6월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대북 중대제안'을 알려주면서 6자회담 재개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종석(李鍾奭) 당시 NSC(국가안보보장회의) 사무차장이 정 장관을 지원하며 막후 영향력을 갖는 '투톱 체제'로 운영됐다고 볼 수 있었다.

올해초 이 차장이 통일장관으로 영전하고, 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하면서 이종석 장관이 외교안보팀의 리더가 될 것으로 관측됐지만, 6자회담 단절과 남북관계의 차질로 이 장관의 입지는 줄어들고, 오히려 송민순 실장의 입지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NSC 상임위원회를 사실상 대체하는 안보정책조정회의가 신설된 것도 송 실장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계속되면서 6자회담이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송 실장은 미국측 카운터 파트인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 및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지난 9월 한미정상회담에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 마련을 합의해 돌파구를 찾아내기도 하는 등 6자회담 수석대표 당시 '9.19 공동성명' 산파역 답게 협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평가이다.

평소 타고난 성실함과 뚝심, 치밀함에다 이 같은 창의적 외교력이 노 대통령의 신뢰를 깊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외교안보라인의 개편 회오리에다, 후임 안보실장 인선난이라는 '이중 난관'을 뚫고 외교장관으로 발탁되는 것은 북한 핵실험 이후 6자회담 관련국들을 상대로 한 치밀한 외교력과 협상력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평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중국, 미국의 3자 합의로 전격적으로 6자회담을 재개키로 합의함에 따라 송 실장이 외교부 수장으로 어떤 진가를 발휘할 것인지도 주목된다.

그가 주도적으로 창안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도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의 발언 맥락을 거두절미한 일부 언론의 확대 보도로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각별한 신뢰를 쌓고 있고, 부시 행정부의 핵심 외교 라인업인 라이스 국무장관, 해들리 보좌관과 '핫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그의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외교안보팀 개편에서 다른 부처 수장들이 대부분 내부 전문가 출신의 발탁인사들이고, 정치인 출신인 이재정(李在禎) 통일장관도 정동영 전 장관같은 '실세 정치인' 콘셉트보다는 '전문가' 콘셉트로 발탁된 케이스이기 때문에 새 외교안보팀에서 송 실장쪽으로 무게가 자연스럽게 실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임 안보실장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학자출신 백종천(白鍾天) 세종연구소장이 실제로 안보실장으로 발탁될 경우 안보실의 역할도 실무, 관리형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송민순 원톱 체제'라는 평가가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법 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