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20년' 英 금융제국의 부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빅뱅(Big Bang)' 20년을 맞은 영국 런던 금융가 '더 시티(The City,이하 시티)'가 세계 금융업의 메카로 부활하고 있다.
월가에 몰렸던 기업공개 물량이 시티 쪽으로 선회하고 있으며 헤지펀드 자산 운용의 중심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시아와 러시아에 고속 성장 기업들이 많아 이들이 지리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런던 증시가 뉴욕보다 선호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런던 소재 뉴욕은행의 마이클 콜-폰테인 전무는 "1980,90년대에는 미국 금융시장을 거치지 않고 대형 금융 거래가 이뤄지기 힘들었다"며 "이제는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시티의 부활은 길게 보면 1986년 10월27일 영국 정부가 단행한 획기적 금융개혁 정책인 '빅뱅'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 금융당국은 주식매매 위탁수수료 자유화 등을 핵심으로 하는 금융회사 간의 경쟁 촉진 및 시장자유화 대책으로 위축돼있던 금융시장 수술에 나섰다.
처음 10년간은 위태로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1990년대 초에는 불황이 찾아와 시티에도 감원 바람이 불었다.
1995년 SG워버그가 더스위스에 매각되는 등 투자은행 2곳이 나가 떨어졌다.
영국이 배제된 유로화 도입으로 금융회사들이 시티를 떠나 유럽중앙은행(ECB)이 있는 프랑크푸르트로 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다.
그러나 유로화 체제는 오히려 시티의 금융시장 장악력을 높여주었다.
군소 센터들이 문을 닫고 런던이 유로화 거래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유로존이 아닌 런던에서 모든 금융 비즈니스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다.
파생상품 거래에서도 시티가 주도권을 확보하게 됐다.
다른 거래소의 4~5배 많은 거래량을 보이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공동으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신디케이트론의 경우,작년 유럽이 54% 성장한 데 비해 미국은 15% 성장에 그쳤다.
헤지펀드 자산도 2003~2005년 유럽에서 80% 성장했지만 미국은 28% 성장한 데 머물렀다.
모두 시티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시티는 실력보다는 학맥이 지배하던 정말 케케묵은 동네로 유명했는데 빅뱅 이후 실적주의로 변화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성장에는 금융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밑거름이 됐다.
미국은 엔론의 분식회계사건 이후 회계감사를 강화한 사베인스-옥슬리법,이자율 제한 등으로 영국보다 훨씬 강도 높은 규제책을 쓰고 있다.
반면 잉글랜드은행은 외국 은행을 가볍게 모니터링하는 정도의 규제에 그쳐 시티의 경쟁력 강화를 이끌고 있다.
미국은 사베인스-옥슬리법이 지나치게 기업활동을 규제하고 있다고 판단,최근 부랴부랴 개정에 나섰지만 떠나간 금융자본을 다시 끌어들이기는 어렵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런던이 경쟁력 있는 인재와 자본을 세계 각지로부터 끌어당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시티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은 과거 15년 사이에 50% 늘었다.
소득세율이 20년 전에 비해 상당폭 떨어진 것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또 세계 최고 금융회사들이 모여드는 금융 클러스터로 확고한 뿌리를 내리면서 거래 비용이 더 낮아졌으며 각종 리스크도 줄어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경쟁을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어야 경제가 번창한다는 교훈을 '시티의 부활'에서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
■빅뱅(Big Bang)
"英금융 경쟁력 키워라" 1986년 각종 규제 완화
원래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물리학 용어였으나 1986년 영국의 금융개혁 조치 이후 획기적인 금융 혁신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게 됐다.
영국의 빅뱅은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산업 간 장벽을 허물고 주식매매 위탁수수료 자유화,외국 금융회사의 자유로운 시장 참여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