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베트남 러시'가 가속화되고 있다.

10여년 전 앞다퉈 중국으로 달려가던 양상과 비슷하다.

베트남은 생산기지와 판매기지 등의 측면에서 모두 각광을 받고 있다.

우선 인건비가 중국보다 저렴하고 투자규제도 덜하다.

여기에다 8300만명에 달하는 폭넓은 내수기반을 갖고 있고 경제는 연 평균 7~8%씩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개발의 경우 GS건설 대우건설 등 대기업에 이어 중견 건설업체인 대원도 신도시 건설에 나설 정도로 달아올랐으며,상당수 중소 제조업체들은 중국공장을 버리고 속속 베트남에 둥지를 틀 채비를 갖추고 있다.

대기업들은 다음 달 중 베트남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게 되면 시장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고 신사업 구상에 한창이다.


[ 건설업계, 5개 신도시 개발 독점 ]

전응식 대원 전무는 지난 25일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기자와 만나 "호찌민과 베트남 중부 해안도시인 다낭에 각각 70만평과 60만평 규모의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며 "현재 베트남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대원의 2개 신도시 개발 계획이 베트남 당국의 승인을 받을 경우 기존 대우건설 컨소시엄(하노이 인근 63만평)과 GS건설(호찌민시 110만평),포스코건설(하노이 80만평)을 포함해 국내 업체들의 베트남 신도시 프로젝트는 5개로 늘어나게 된다.

대원은 다낭 신도시의 경우 2억~3억달러를 투입,육지와 맞닿은 60만평 규모의 바다를 메워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대원은 이곳에 주거시설 및 업무시설과 함께 골프장,오페라하우스 등 문화레저시설까지 갖출 계획이다.

황유남 대원 해외사업팀 이사는 "바다를 메울 경우 거주민 이주대책 등 골치 아픈 문제가 없기 때문에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장점이 있다"며 "이르면 내년 초 베트남 당국의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소제조업, 중국 떠나 베트남으로 ]

중국 칭다오에서 골프가방을 생산하던 A사.이 회사 관계자는 "중국에서 더 이상 눈치가 보여 사업을 못 하겠다"며 "얼마 전 베트남 호찌민시 인근 빈증성의 미푹공단에 입주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방이라는 업종이 부가가치가 낮고 고도의 기술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판단해 중국 당국이 지난해부터 노골적으로 핍박을 해오더라"고 전하면서 "베트남으로의 이전은 자의 반,타의 반"이라고 말했다.

이성훈 KOTRA 호찌민 무역관장은 "최근 자동차 부품인 와이어 하네스 제조업체와 유리제조업체가 베트남 공장건설 문의를 해오는 등 그동안 중국에 공장을 뒀던 업체들의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고 밝혔다.

안유석 KOTRA 호찌민시 투자담당 과장은 "지난 3월 베트남 정부가 호찌민 인근에 베트남-싱가포르공단을 조성키로 하고 1단지를 분양했는데 6개월여 만에 80% 이상이 분양됐다"며 "중국에 거점을 둔 한국과 일본의 중소업체들이 대거 입주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중소업체가 중국을 탈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우선 단순 조립이나 섬유업종 등 기술력이 필요 없거나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업체의 경우 중국정부가 과거 감면해준 세금까지 들먹이며 '공장을 중국 내륙지방 또는 해외로 옮기라'고 압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전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이유는 베트남의 저렴한 인건비와 무궁무진한 사업기회 때문이다.

단순 제조업체의 경우 베트남 인건비는 월 50~100달러로 중국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에는 못 미치지만 사회간접자본(SOC) 등 제반여건도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 인근 국가보다 좋은 편이다.


[ 대기업, SK.금호.롯데 등 투자 줄이어 ]

대기업들도 베트남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국내 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은 모두 5억9900만달러.이미 작년 한해 투자규모(5억8077만달러)를 넘어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난 25일 타이어 공장과 금호아시아나플라자 기공식을 가진 것을 비롯해 △두산중공업 담수화 및 발전 설비 공장 △포스코 냉연공장 △대한통운 물류합작법인 설립 등 굵직한 투자가 모두 올해 이뤄졌다.

이창근 베트남 한인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베트남 정부가 WTO 가입을 위해 각종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정비하고 있는 만큼 국내 대기업의 추가 투자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SK그룹은 조만간 하노이에서 최태원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그룹 전략회의를 열어 베트남 정유회사 설립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롯데그룹도 호찌민시에 대형 쇼핑몰과 할인점 설립을 추진 중이다.

호찌민(베트남)=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