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祥奎 < 과학기술부 과기혁신본부장 >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저서 '부(富)의 미래'에서 지식기반 경제시대를 움직이는 세 가지 요소로서 시간,공간,지식을 언급했으며,이들 요소의 구조변화 과정을 통해 '혁명적 부'가 창출된다고 제시한 바 있다. 지식기반 경제시대의 부의 창출은 지식혁명의 속도에 대한 적응 여부,국가 인종 등 경계를 뛰어넘는 활동 영역의 확장,그리고 핵심 지식을 선별해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지식기반 경제시대에서는 단순히 많은 예산과 인력의 투입만으로 과학기술 경쟁력이 보장되지 않는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실용기술을 확보하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속도,지리적 울타리를 넘어 협력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공간의 확장,각종 정보와 지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등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요소들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제협력이 필수적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IBM의 도노프리오 부회장 역시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회사가 국제적 협업을 통해 단기간에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대표적인 성공사례로 IBM,소니,도시바가 함께 개발한 게임기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셀(Cell)을 꼽았다.

이처럼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상호협력은 날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미국 일본과 EU의 여러 국가들이 국제협력과 공동연구의 확보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은 우주정거장 개발과 관련해 러시아와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며 원자력 분야에서는 국제 원자력에너지 파트너십(GNEP)을 통해 일본 영국 등 5개국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원자력 분야에서 EU와,환경 분야에서 중국과 각각 협력을 추진 중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화학연구소(RIKEN)는 2400명의 연구원 중 400명이 외국인일 정도로 국제화에 앞서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기업 및 연구기관들이 국제공동연구와 해외 진출에 나서는 한편 외국 연구소의 국내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까지 KIST 등 12개 연구기관에서 세계 12개국에 24개의 해외 R&D 거점을 설치했으며 삼성전자 등 28개 기업에서 12개국에 60개의 해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에서는 파스퇴르,카벤디쉬,인텔,IBM,지멘스 등 35개의 외국연구소를 유치했고 국내에 설립된 외국기업의 부설연구소는 이미 900개를 넘어섰다.

정부도 외국 유명연구소의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각종 제도와 법령을 개선하는 등 다각적인 시책을 마련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고도기술을 국내에 도입한 외국 연구기관에 대해 병역특례기관 지정시 가점을 주도록 병역지정업체 심사기준을 변경한 바 있다. 법무부는 지난 8월 국내에 파견된 외국 연구원에게 일반연수 비자를 발급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2004년 현재 국가 총연구개발비 중 국외로부터의 유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0. 5%로 영국(19. 4%),프랑스(8. 4%),독일(2. 3%) 등 선진국과 비교해 R&D의 국제화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인데,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과 함께 대학,공공연구소,기업 모두가 정성을 다해야 한다. 대학은 인력교류와 공동연구를 통해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공공연구소는 국제협력사업과 연구소의 해외 진출을 통해, 그리고 기업은 다국적 기업과의 협력 및 공동개발을 통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비록 R&D 세계화를 꾀하기 위한 노력들이 선진국에 비해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시행착오를 줄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R&D 자원을 선별해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혁신 능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제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과학기술혁신체제를 기반으로,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R&D 세계화를 통해 과학기술경쟁력 강화,나아가 '혁명적 부'의 창출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