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노 대통령과 이미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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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 정치부 차장 >
15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5일 앞둔 1997년 12월13일 저녁 김대중 후보(DJ) 선거캠프에 핵심 참모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결같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다음 날로 예정된 마지막 TV토론을 앞두고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DJ는 감기로 콧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상황이었다.
콧물을 멈추게 하려면 독한 주사를 맞아야 하지만 자칫 토론을 망칠 수 있고 거꾸로 주사를 안맞자니 콧물이 흘러내리는 모양새가 좋지않다는 게 고민거리였다.
참모들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주사로 결정했다.
그렇지않아도 74세의 나이로 인해 건강문제가 대선이슈로 제기된 터라 콧물이 선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성공적인 토론 대신 건강한 이미지를 택한 것이다.
DJ는 5일 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만큼 이미지는 정치에서 절대적이다.
우리 현실정치만 놓고 보면 "이미지는 정치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이미지보다는 콘텐츠에 충실하자"고 다짐하는 정치권이 선거때만 되면 금과옥조로 삼는 게 다름아닌 이미지다.
2004년 총선을 한달여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최고급 당사 대신에 영등포 청과물 시장의 폐건물로 이사간 것이나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를 세운 것도 이미지에 매달리는 정치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법 대선자금이 당사 임대에 사용됐다는 의혹(여당)과 한나라당 하면 따라붙는 '차떼기당'이란 수식어를 떼는데 폐건물과 천막을 이용한 것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후보(현 서울시장)가 환경운동 경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녹색을 사용한 것이나 강금실 후보가 자주색을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TV에서 인기를 끌었던 '포청천' 이미지를 앞세워 열세였던 선거전을 뒤집었던 조순 전 시장도 성공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미지 정치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잘못 활용하면 부작용을 넘어 거센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이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 당선때까지만 해도 특유의 '서민 이미지'로 표를 모았던 노 대통령이 당선 후에도 '서민'과 '자주'로 요약되는 차별화된 이미지에 집착한 게 두고두고 정권에 부담이 되고 있다.
당선자 시절 "미국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며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역설했던 '자주'는 한·미동맹의 균열이라는 값비싼 대가로 이어졌다.
최근 국론분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문제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애당초 무리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강남만을 겨냥해 부동산규제정책을 쏟아낸 것도 따지고 보면 서민 이미지에 집착한 결과라는 시각이 적지않다.
부자동네인 강남을 공격해 대다수 서민의 지지를 끌어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집값을 잡기는커녕 제2,제3의 강남인 '버블세븐'을 만들고 전국의 땅값 집값을 들썩이게 했다.
믿었던 서민들은 참다못해 등을 돌려 버렸다.
이미지 정치에 매달려 국민의 마음을 읽는데 실패한 결과다.
국정 지지율이 20%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leejc@hankyung.com
15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5일 앞둔 1997년 12월13일 저녁 김대중 후보(DJ) 선거캠프에 핵심 참모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결같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다음 날로 예정된 마지막 TV토론을 앞두고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DJ는 감기로 콧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상황이었다.
콧물을 멈추게 하려면 독한 주사를 맞아야 하지만 자칫 토론을 망칠 수 있고 거꾸로 주사를 안맞자니 콧물이 흘러내리는 모양새가 좋지않다는 게 고민거리였다.
참모들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주사로 결정했다.
그렇지않아도 74세의 나이로 인해 건강문제가 대선이슈로 제기된 터라 콧물이 선거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성공적인 토론 대신 건강한 이미지를 택한 것이다.
DJ는 5일 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만큼 이미지는 정치에서 절대적이다.
우리 현실정치만 놓고 보면 "이미지는 정치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이미지보다는 콘텐츠에 충실하자"고 다짐하는 정치권이 선거때만 되면 금과옥조로 삼는 게 다름아닌 이미지다.
2004년 총선을 한달여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최고급 당사 대신에 영등포 청과물 시장의 폐건물로 이사간 것이나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를 세운 것도 이미지에 매달리는 정치권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법 대선자금이 당사 임대에 사용됐다는 의혹(여당)과 한나라당 하면 따라붙는 '차떼기당'이란 수식어를 떼는데 폐건물과 천막을 이용한 것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후보(현 서울시장)가 환경운동 경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녹색을 사용한 것이나 강금실 후보가 자주색을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TV에서 인기를 끌었던 '포청천' 이미지를 앞세워 열세였던 선거전을 뒤집었던 조순 전 시장도 성공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미지 정치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잘못 활용하면 부작용을 넘어 거센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이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 당선때까지만 해도 특유의 '서민 이미지'로 표를 모았던 노 대통령이 당선 후에도 '서민'과 '자주'로 요약되는 차별화된 이미지에 집착한 게 두고두고 정권에 부담이 되고 있다.
당선자 시절 "미국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며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역설했던 '자주'는 한·미동맹의 균열이라는 값비싼 대가로 이어졌다.
최근 국론분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문제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애당초 무리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강남만을 겨냥해 부동산규제정책을 쏟아낸 것도 따지고 보면 서민 이미지에 집착한 결과라는 시각이 적지않다.
부자동네인 강남을 공격해 대다수 서민의 지지를 끌어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집값을 잡기는커녕 제2,제3의 강남인 '버블세븐'을 만들고 전국의 땅값 집값을 들썩이게 했다.
믿었던 서민들은 참다못해 등을 돌려 버렸다.
이미지 정치에 매달려 국민의 마음을 읽는데 실패한 결과다.
국정 지지율이 20%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