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노버에서 동쪽으로 100km가량 떨어진 소도시 귀테르스로.식기세척기 세탁기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프리미엄 가전업체 밀레의 본사가 있는 작은 도시다.

자본금 4000억원,연간 매출 3조원.전 세계 종업원 수 1만5000명.글로벌 기업으로서는 크다고 할 수 없는 규모다.

하지만 밀레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세계 최초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개발한 데다 가전 부문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그래서 밀레를 '세탁기의 메르세데스 벤츠'라 부른다.

밀레의 기업 역사는 107년.이 회사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밀레 가(家)와 진칸 가(家)라는 두 가문의 '투톱 경영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오너(기업 소유주) 경영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봉건적이고 낙후된 경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 밀레는 기술 드라이브를 앞세운 선진경영 시스템과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귀테르스로(독일)=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1세대-기술 지상주의를 추구하다

밀레의 창업자인 칼 밀레와 라인하르트 진칸은 1904년 자신들의 손으로 처음 만든 세탁기 뚜껑에 라틴어 'Semper melior'(Forever better)를 새겼다.

'항상 더 나은'이란 뜻이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소비자들에게 세계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제공한다는 밀레 107년 역사의 경영철학을 표현한 문구다.

세탁기 사업을 시작한 밀레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13명의 직원으로 시작했으나 10년 뒤(1910년)에는 5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밀레의 성장은 늘 신기술 개발과 함께했다.

1929년 세계 최초로 가정용 식기세척기를 출시한 데 이어 1930년에는 나무가 아닌 금속 재질의 세탁기를 최초로 선보였다.

○2세대-전쟁의 참화를 이겨내다

1937년 칼 밀레 주니어와 쿠르트 크리스티앙 진칸 등이 경영일선에 나서며 2세대 경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종업원은 어느 새 27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곧바로 찾아왔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당시 나치정권은 전쟁물자 생산에 필요한 공장 외에는 전력공급을 중단시켰다.

밀레의 세탁기 공장도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전쟁물자로 분류됐던 자전거만 생산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연합군측의 폭격으로 귀테르스로 공장은 잿더미가 됐다.

1945년 전쟁이 끝나자 2세대는 공장을 재건하고 근로자들을 모으는 일에 매달렸다.

2세 경영인들은 해외수출로 활로를 뚫었다.

1949년 근로자 수는 3000명으로 불어났다.

○비온 뒤에 땅은 굳어지고

전쟁 후유증을 성공적으로 이겨낸 밀레 2세대는 1960년에 3세대인 루돌프 밀레와 피터 진칸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밀레는 또다시 성장을 거듭한다.

전후 세계 경제의 급격한 성장으로 식기세척기와 세탁기 등 가정용 가전제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962년 잘츠부르크에 가정용 세탁기 공장을 새로 지은 데 이어 1965년에는 하노버 인근에 상업용 세탁장비 공장을 설립했다.

이 시기 종업원 수도 3000여명에서 4700명으로 늘었다.

고속성장은 1970년대 들어서도 계속됐다.

독일 바렌도르프에 프리미엄 가전공장을 지은 데 이어 세계 최초로 컴퓨터에 의해 작동되는 터치센서 방식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만들어냈다.

당시 만든 세탁기는 5년 만에 500만대가 팔리며 밀레를 일약 세계적인 가전회사의 반열에 올려놨다.

○3세대-오일 쇼크를 극복하다

하지만 3세 경영진 앞에도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왔다.

1970년대 후반의 오일쇼크였다.

독일의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공장을 폐쇄했다.

루돌프 밀레와 피터 진칸은 이런 위기 속에서 특유의 '콤비 플레이'로 밀레를 구해냈다.

두 사람은 독일 경제위기에 대한 밀레의 입장을 담화문 형태로 발표했다.

"과거 밀레가 장인정신과 최고의 품질로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듯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루돌프 밀레와 피터 진칸은 생산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을 격려했다.

당시 새벽에 회사로 출근하는 루돌프 밀레를 본 귀테르스로 시민들은 그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Early Bird)'라고 부르며 존경했다.

오너의 솔선수범에 근로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보태지면서 밀레는 오일쇼크를 이겨냈다.

○4세대-글로벌 경영 확대

2004년 7월 아침,3세대 공동경영자 중 한 명인 루돌프 밀레 회장이 갑작스레 타계했다.

당초 루돌프 밀레와 피터 진칸은 그해 11월 아들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로 합의해놓은 상태였다.

루돌프 밀레의 파트너였던 피터 진칸도 약속대로 미련 없이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밀레호(號)는 이제 루돌프 밀레의 아들 마르쿠스 밀레와 피터 진칸의 아들 라인하르트 진칸을 새 선장으로 맞이했다.

4세대 경영의 시작이었다.

4세대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제1의 경영목표로 정했다.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2005년 한국에도 진출했다.

밀레의 해외 판매법인은 총 37개로 늘어났다.

회사 매출도 2003년 21억9000만 유로,2004년 22억6000만 유로에 이어 지난해 25억4000만 유로로 늘어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