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내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전향적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인의 정서에 비춰보면 미흡한 것 아니냐."

북한의 핵 실험 강행으로 전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린 가운데 진행된 13일 한일 정상회담을 지켜본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른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발언을 '구렁이 담넘어 가듯 했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만나 구체적으로 어떤 언급을 했는 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롯데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피력했다.

아베 총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 양측이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양국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촉진한다는 관점에서 건설적으로 대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민의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것을 바탕으로 상호이해를 촉진하고 미래지향적 신뢰관계를 구축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국관계의 건전한 발전'이나 '미래지향적 신뢰관계'라는 외교적 수사가 덮여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한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다만 '한국민의 감정'을 언급함으로써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일본 총리로서의 예의를 차리는 듯 했다.

일본 보수층의 절대적 지지 속에 총리가 된 그가 딛고 선 자국내 정치 환경을 감안하면 비교적 전향적인 발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간 이 문제와 관련 `갈 계획을 미리 밝히지 않겠다'는 수준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던 아베 총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외교적 수사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한국민의 감정' 등을 언급한 것은 일정 부분 한국측이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야스쿠니에) 갈거냐 말거냐 즉답을 요구하지 않았다"면서 "당연히 안 갈 것으로 이해한다"고 언급한 것도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시각을 뒷받침한다.

아울러 과거사 인식 문제와 관련한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은 1995년의 무라야마 총리 담화나 군대위안부 강제동원을 사과했던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를 그가 자민당 총재 경선과정에서 인정하기를 꺼려했던 점을 감안할때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아시아 각국 사람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주었고 그리고 사실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며 "그러한 생각은 지난 60년동안 살아온 사람들과 제가 공감을 하고 있고 또 이런 마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적 성향을 감추지 않았던 아베 총리가 이처럼 취임 직후 현실주의적 외교 노선을 택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전임자가 손상시킨 대 아시아 외교에서 `포인트'를 획득함으로써 집권기반을 넓히려는 국내 정치적 변수가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그가 보여온 기존의 `모호성' 전략이 이번에도 유지됐으며 내용면에서 우리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아무래도 우세하다.

특히 그가 밟고 있는 땅이 한국이라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무게감을 지니게 된다.

이번 발언으로 그가 향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할 경우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분석이 많지만 어쨌든 이번 발언으로 아베 총리가 참배를 하지 않을 것으로 무작정 기대하기는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조준형 기자 lwt@yna.co.kr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