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추진위원회가 선정한 시공사는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3월부터 올 8월까지 전국 재개발추진위 수백곳이 이미 시공사를 선정한 터여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7민사부는 권태섭씨 등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사는 주민 11명이 '흑석 제9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상대로 낸 주민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추진위가 지난해 11월 재개발사업의 공동시행자(시공사)로 SK건설을 선정한 것은 무효"라고 지난달 15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동법 시행령 관련 규정을 해석해 보면 시공자 선정은 조합의 고유 권한으로 판단된다"며 "조합이 결성되기 전 단계의 추진위가 주민총회를 열어 시공사를 선정한 것은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이 2.3심을 거쳐 확정될 경우 지난해 3월18일부터 올 8월24일 사이 추진위로부터 획득한 건설사의 시공권은 무효가 된다.

시공사 선정에 관한 조항인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11조는 당초 재개발지역의 시공사 선정시기를 사업계획승인 이후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개정된 11조는 재건축의 시공사 선정시기는 그대로 놔둔 반면 재개발 시공사 선정시기에 대한 조항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전국 재개발지역 추진위들은 이를 추진위 단계부터 시공사 선정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앞다퉈 시공사 선정에 들어갔다. 자금력이 없는 추진위들은 공동시행자인 시공사를 통해 운영비와 각종 용역비를 조달하는 것이 절실했던 것.

그러나 올 5월(시행시기 8월24일) 11조가 다시 개정돼 재개발 시공사 선정시기가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정해지면서 시공사 선정 붐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법의 재개정으로 시공사 선정시기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없던 시점에서 결정된 시공사의 적법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건설교통부 주거환경팀 관계자는 "추진위들의 질의회신에 조합만이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며 "법원의 판단이 더해짐으로써 이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추진위 단계에서 시공사를 선정한 재개발추진지역에서는 큰 혼란이 발생할 전망이다. 기존 추진위에 반대하는 세력이 시공사의 재선정을 요구할 경우 시공사들은 또다시 수주 비용을 투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재경합에서 시공권을 유지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미 시공사 자금이 수십억원씩 투입된 상황에서 시공사가 다른 곳으로 바뀌면 써버린 돈을 두고 법적 다툼이 발생하는 등 재개발이 지지부진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인 최광석 변호사는 "재개발지역에서 기존 추진위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없는 곳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번 판결을 내세워 반대파가 추진위측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 기간 중 대형건설사들이 서울 수도권 부산 등에서 회사별로 20~50곳의 시공권을 따냈다는 점이다. 50여곳에서 시공권을 따낸 G건설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300~400개의 추진위가 시공사를 선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공사들은 법적 다툼을 피하기 위해 조합인가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건교부 관계자는 "일단 서둘러 주민동의 요건을 충족한 뒤 조합을 설립하고 시공사 추인을 받으면 시공사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근·김현예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