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중 상당수가 자국 내에서는 뇌물공여 관행을 거의 근절시킨 반면 신흥국에서는 여전히 뇌물을 주고 사업권을 따내는 등 뇌물에 대해 이중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국제투명성기구는 이 같은 내용의 '2006 뇌물공여지수(BPI)'를 다음 주 발표할 계획이다.

국제투명성기구는 126개국 1만1000명의 기업인을 상대로 뇌물수수 관행을 조사했으며 이번 조사는 2002년 이후 4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조사 결과 선진국 기업들의 뇌물공여 관행은 상대 국가와 분야에 따라 커다란 편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은 뇌물수수에 관행이 많지 않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 역시 나쁜 국가에서는 사업과 관련,거의 뇌물을 주거나 받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각종 사업권 취득과 관련,뇌물수수가 만연하고 있는 개도국에서는 선진국 기업들도 뇌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해당기업 관계자들은 "현지 관행을 따랐을 뿐이며 사업상 불가피하다"라고 응답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집행이사 데이비드 누스바움은 "이번 조사에서 모든 나라 기업들이 뇌물을 주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따라서 다른 기업들이 주니까 우리도 준다는 식의 논리는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 같은 관행 자체가 문제"라며 "신흥국 정부들이 뇌물수수에 엄격한 법집행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누스바움 이사는 이어 선진국 정부 역시 자국 기업의 뇌물공여에 좀더 실효성 있는 단속과 처벌을 해야 뇌물수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은 1990년대 말 자국 기업의 해외 뇌물공여를 금지하는 뇌물방지 협약을 채결했지만 집행에 강제성이 결여돼 막상 기업들의 관행을 뿌리뽑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스바움 이사는 "선진국들이 뇌물방지 협약을 통과시키고도 이를 강제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위선적"이라며 "OECD 회원국에서 이 협약에 따라 기소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 같은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는 선진국 개도국이 모두 협조해야 하며 선진국의 개발 원조를 개도국의 반부패 정책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개도국 기업들의 뇌물공여는 선진국 기업보다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결과 사업을 하면서 자국 내는 물론 해외에서 가장 많은 뇌물을 뿌리는 기업은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 소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기업의 뇌물공여가 심한 것은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해외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2002년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21개국 중 러시아 중국 대만 한국 순으로 기업의 뇌물 관행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호주 스웨덴 스위스 기업 순으로 뇌물을 주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