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첫날 지도부만 믿어달라고 하더니…. 월급 못받고 엄청난 빚만 떠안았으니 올 추석을 어떻게 보낼지 숨이 꽉 막힌다."

22일 포항건설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은 노조 지도부에 분노를 터뜨리는 조합원들의 글로 가득 찼다. 18년된 포항건설노조는 "떼쓰면 다 된다"는 명분 없는 막가파식 파업에 조합원들이 등을 돌리면서 스스로 해체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83일간의 파업으로 노조가 얻은 것은 쓰라린 상처뿐이다. 불법 파업 기간 중 조합원 70여명이 구속됐다. 불법 점거 당시 기물파손 등으로 포스코가 제기한 16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큰 부담이다.

한 조합원은 "사태를 악화시킨 민주노총이 더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7월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뒤 9일 만에 노조원들이 자진해산했을 때만해도 노사 자율협상의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노조가 구속 조합원들의 사법처리 철회를 선결조건으로 내걸고 민주노총이 이를 정치쟁점화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8월 한 달내내 포항 도심은 이들의 불법 집회와 경찰과의 유혈 충돌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강성 지도부는 첫 잠정합의안을 조합원 찬반투표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도덕적 불감증을 드러냈다.

거부 이유가 노무독점공급권의 성격을 지닌 단체협약상의 '노조원 우선 채용' 조항을 지속 보장받으려는 노조 지도부의 이기주의 때문이었다는 본보 보도(8월21,24일자)가 나간 뒤 포항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5만여명이 거리로 나와 민주노총의 개입과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조합원들이 파업 현장을 이탈,공사 현장으로 무더기 복귀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강성지도부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조합원들을 설득해 지난 13일 잠정합의안 투표를 부결시키는 등 노무공급권에 대한 끝없는 미련을 보였다.

하지만 불과 7일 만에 조합원들의 엑소더스로 노조는 와해 직전에 놓이고 말았다. 온건노선의 조합원들이 일자리를 볼모로 전횡을 저지르는 강성 지도부를 배척하고 새로운 노조 건설을 선언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번 사태는 강성 투쟁을 밥먹듯하는 대형 사업장 노조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포항=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