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允鎬 < LG경제연구원장 >

국제간 자본이동이 활발한 가운데 외국자본의 국내유입은 우리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국자본의 경영감시로 기업의 투명성 제고 등 시장의 기업감시 기능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주주이익 중시 경영풍토가 확산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최근 국내은행의 주식을 사고 팔아 상당한 시세차익을 얻은 외국계 사모(私募) 펀드들이 국내에서 세금을 한 푼도 납부하지 않자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투자은행 등의 추정 결과에 따르면 현재 국제금융 시장에서의 헤지펀드 등 투기성 단기자금 규모는 약 1조8000억달러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산업활동의 세계화,금융자유화,투자에 대한 규제완화 및 통신기술 발달을 악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세부담을 회피하는 공격적인 절세전략(ATP: Aggressive Tax Planning)을 취하고 있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대부분의 외국계 펀드의 국적은 미국 영국 등 금융선진국이 아니다.

조세회피지역(Tax haven: 이자와 배당소득세,법인세가 면제되는 지역)인 '케이만 제도'나 말레이시아의 작은 섬 '라부안'에 이름뿐인 본사,즉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다.

이러한 외국계 펀드는 자본거래를 통한 차익에 대해 국내 세법과 국제 조세조약을 공격적으로 활용하여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OECD 등에서 제정한 국제기준에 따르면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의 주식을 거래하여 양도차익(讓渡差益)이 발생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외국기업이 소재하는 국가에서 과세하는 방식으로 이중과세를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세회피 목적으로 조세피난처에 명목상의 회사를 설립하여 주식을 거래하는 경우에는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사실상의 투자자를 확인해 과세가 가능하다.

현재 우리정부는 조세피난처로 활용되는 지역을 조세조약 적용 대상에서 명확히 배제하도록 관련국가와 조약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 공조 없이 외국자본에 대해 우리나라만 차별적인 규제를 가할 경우 자칫 외국자본 이탈로 이어질 수 있고,외국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적 토론의 장을 통하여 국가간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외톨이식 조세행정으로는 글로벌 경제시대의 조세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세행정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OECD 국세청장 회의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서울에서 열린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이번 OECD 국세청장 회의의 주요 의제로 '국제적 조세회피 방지를 위한 국제적 공조(共助)'가 선정되고 과세당국간 실질적 협력 증진을 위한 과제로서 '서울선언'이 채택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조세회피 기업에 부당한 이익이 돌아가는 것을 막고 국제기준에 따라 성실히 신고하는 기업은 철저히 보호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글로벌 경제시대의 세금문제는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어 있다.

국제교역 및 투자를 왜곡시키는 조세정책 제거,이중과세(二重課稅)의 방지,탈세 조세피난처 규제 등에 대한 국제적 기준의 설정방식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전체회의 이외에도 한국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미국 중국 등과도 양자(兩者) 회의를 통해 한국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연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OECD 국세청장 회의의 성공적 개최와 높아진 위상을 계기로 한국의 과세당국은 더욱 더 활발한 조세외교를 펼치길 바라 마지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 현지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그리고 직면할 수도 있는 조세상 애로사항이 해소되고 사전에 정지(整地)될 수만 있다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더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