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홍콩의 디즈니랜드와 더불어 동북아 관광산업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테마파크가 개장되면 연평균 1만5000명이 신규로 고용되고 생산유발효과는 8000억원,소득유발효과는…."

지난 3월 부산시민들은 흥분에 들떴다.

세계적인 영화사 미국 MGM측이 부산시와 손잡고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에 1조원을 들여 '할리우드형 영화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선거용'이라는 경고음도 있었지만 경기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시민들로선 장밋빛 청사진을 곧이곧대로 믿는 도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MGM측과 부산시가 토지매입 가격 등에 큰 입장차이를 보이면서 공식적인 협상 종료기한인 7월 말을 이미 훌쩍 넘긴 것.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을 보지 못해 '시계제로' 상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추진 중인 외자유치형 테마파크 사업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치밀한 사업성 검토 없이 선거공약용 등으로 남발하다 보니 계획만 요란할 뿐 '속 빈 강정'에 그치고 있는 것.서울시 부산시 대구시 등 지자체의 장밋빛 청사진대로 실현될 경우 좁은 한국땅에 '디즈니랜드'만 서너 곳이 생길 판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외자유치라는 당근으로 지자체 등을 유혹하는 브로커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이름만 빌려주고 실제 돈은 한국인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검은머리 외국인 투자설'이 나돌고 있는 곳도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A사의 경우 최근 수년 사이에 중국과 일본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 한국에도 여러 곳에 투자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실제 투자여력이 있는지 제대로 따져봐야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테마파크 사업이 표류하는 원인 제공자로 지자체장을 꼽는 시각이 많다.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탓에 '공수표'를 남발했다는 지적이다.

강원도가 2000년부터 국내외 기업 및 투자자들과 체결한 양해각서만도 20여건.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전무하다시피 하면서 선거를 의식한 전시행정이란 여론이 들끓고 있다.

부산의 MGM테마파크 구상은 지난 5·31 지방선거를 불과 45여일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당초 MGM측이 제시한 가격과 조건들은 부산시가 알고 있었거나 알아야 되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선거를 앞두고 부산시가 너무 서두른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제대로 사업성을 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담당자들의 전문성도 문제다.

그간의 사업추진 내용을 뜯어보면 국제적인 정보력을 바탕으로 사업타당성이나 외국자본의 자금 조달력 등을 검증할 실력을 갖췄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명 테마파크 유치에 목을 맨 지자체들은 테마파크 본사의 의도나 상황을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중간 에이전트의 말만 믿고 언론에 성급히 발표한다"며 "원래 사업자가 치러야 할 거액의 용역비용을 테마파크 본사도 아닌 일개 외국계 에이전트에 지불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병일·백창현·김태현·신경원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