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던 한 굴지의 대기업은 한동안 경영공백에 시달려야 했다.

주식거래를 둘러싼 이면계약 혐의를 조사하겠다던 검찰이 사무실 내 모든 컴퓨터와 자료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몇개월이 지나서야 자료를 돌려받기는 했지만 그동안 대부분 경영활동은 잠정 중단상태였다.

압수수색을 당했던 이 회사 관계자는 "저인망식 마구잡이로 자료를 휩쓸어가니 회사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졌다"며 "압수수색을 하려면 목적물건만 가져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같은 압수수색은 최근 들어 빈도 수나 강도면에서 점점 강화되는 듯한 양상이다.

이처럼 검찰의 광범위한 금융계좌 추적 등 '포괄적 영장'이 기업의 영업비밀이나 국민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영장발부 기준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압수수색 기준은 대상과 기간을 '특정'해야 한다는 정도에 불과해 검찰이 '모씨 이름으로 된 전체 금융기관의 금융계좌'라는 식으로 신청하면 거의 모든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대법원은 14일 압수수색영장 발부 기준을 엄격하게 하는 쪽으로 개선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4개 국가에서 영장제도를 연구했던 법관 4명 등 모두 6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압수수색영장 연구팀'은 2개월여 기간 조사를 통해 선진사례를 연구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영장 발부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면 전국영장전담판사회의의 논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대법원이 이처럼 제도 개선에 나선 데는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0%를 웃돌아 80%대 중반인 구속영장 발부율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자성에서 비롯됐다.

또 법조브로커 김홍수씨 사건에 연루된 조관행 전 고법 부장판사 부인의 금융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잇따라 퇴짜를 놓았던 법원이 따가운 비판여론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모교인 광주일고를 방문한 자리에서 "신체나 생명에 대한 강제처분에 대해서는 국민 입장에서 봐야 한다"며 법관이 영장 발부에 엄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압수수색만을 연구하는 팀이 만들어지기는 처음"이라며 "그동안 수사기관의 편의만 생각했지 당하는 국민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취지에서 제도 개선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화이트칼라 범죄나 부정부패 사범 등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사상 폭넓은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물증위주의 과학수사를 위해서는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 등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수사현실을 모르는 판사들이 본질은 도외시한 채 절차만 엄격하게 하려는 게 아니냐"고 반박했다.

최근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 비리 의혹이나 법조비리 수사과정에서 번번이 영장이 기각되는 등 검찰과 법원의 갈등은 고조되고 있어 이번 대법원의 영장제도 개선작업 착수는 앞으로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