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문태준 '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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걀쭉한 목을 늘어뜨리고 해바라기가 서 있는 아침이었다
그 곁 누가 갖다놓은 침묵인가 나무 의자가 앉아 있다
해바라기 얼굴에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박혀 있다
태양의 궤적을 좇던 해바라기의 눈빛이 제 뿌리 쪽을 향해 있다
나무 의자엔 길고 검은 적막이 이슬처럼 축축하다
공중에 얼비치는 야윈 빛의 얼굴
누구인가?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지그시 쓸어내린다
가을이었다
맨 처음 만난 가을이었다
함께 살자 했다-문태준 '빈의자' 전문
해바라기 아래 이슬 맞은 나무의자가 놓인 풍경이 여기에 있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날선 감각들이 풀어지며 삶이 그윽해 진다.
누구든 상처 없이 살아갈 수는 없기에 때론 그처럼 적막하고 쓸쓸한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태양의 궤적을 좇던 해바라기의 눈빛이 뿌리쪽을 향해 있는 것은 계절이 정점을 지나 저물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풍경 아래서라면 우린 삶에 대해 한없이 겸손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덧 가을이 오고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