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주 < 소설가 >

아이를 3년 동안 어린이집에 보내다 보니 베테랑 학부모가 다 되었다.

기저귀 차고 우유병 물고 등원하던 아이가 어느덧 초등학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내 아이와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이름과 성격은 당연히 꿰고 있고 어린이집의 운영 상황과 보육(保育) 과정도 누구에게든 설명해 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으니 그 속내가 궁금하기는 여느 학부모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올해 '서울시 보육시설 서비스 평가'에 학부모 자격으로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여러 어린이집을 돌아보면서 수업 시간에도 마음대로 들어가 볼 수 있고 급식도 함께 먹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한껏 들떴다.

두 번에 걸친 교육을 받는 동안 기대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현장 평가에 들어가자 예상과는 다른 많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2주에 걸쳐 16개소의 보육시설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일정은 생각보다 빡빡했다.

자치구별로 배정한 보육시설에 학부모,보육교사,시설장,공무원이 한 조를 이루어 방문하는 형식이었는데 각종 서류부터 교사의 보육 태도까지 살펴보는 일은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조를 이룬 시설장과 보육교사는 그 와중에도 각 시설에서 본받을 점을 메모하고 의욕적으로 배우려 했다.

구청 가정복지과 소속 공무원은 민원으로만 접하던 보육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시설측의 어려움을 귀담아 듣는 모습이었다.

강행군에 불만을 터뜨릴 새도 없이 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평가단에 참여한 것을 반성해야만 했다.

내가 속한 조가 방문(訪問)한 곳은 주로 국공립,정부지원,부모협동 보육시설이었는데 비교적 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그 시설들 중에도 의외로 열악한 곳이 많았다.

하지만 꼼꼼히 둘러보면 공간이 좁아서 발생하는 열악함일 뿐,작으면 작은대로 개성을 살려 정성껏 보육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안타까웠다.

보육실에 휴식 공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아이들이 흙을 만지며 놀 수 있는 작은 마당이라도 있었으면….

계량화된 평가지표에 따라 적절한 점수를 매기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다.

항목별로 3단계로만 나누어진 점수를 적용하기에는 어린이집마다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나 다양했다.

보육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당장 눈에 보이는 시설 환경이나 각종 서류는 점수에 큰 영향을 주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아이들과 눈을 맞추었다.

교사들의 표정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는 얼굴들이 어김없이 그곳에 있어 다행이었다.

보육시설 평가와는 별개로 나는 매번 안도했다.

사실 3년 전만 해도 보육시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었다.

탁아소라는 이름과 함께 다가오는 선입견은 의외로 뿌리깊은 것이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기에 불안과 우울 속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지독한 불신을 없애준 것은 나날이 밝아지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혈육이 아닌 사람이 아이의 보육을 맡는다는 것.그것은 어쩌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일을 맡아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나는 지난 3년 동안 여러 권의 책을 펴냈고 많은 책과 작가들을 널리 소개하는 일도 할 수 있었다.

내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이외의 보육시설을 둘러볼 마음도 갖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그렇게 나도 함께 조금씩 자란 것이다.

보육시설 평가를 마치고 나니 좀더 많은 것들이 함께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집의 여러가지 여건들, 보육시설에 대한 인식,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사회적 차원의 육아 지원…. 그 모든 것들이 이 더위 속에 함께 여물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 어디서든 쑥쑥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