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8·15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후 야스쿠니 문제로 정상회담을 중단해온 한국과 중국을 오히려 비판했다. 또 종전기념일인 15일 아닌 다른 날을 택해도 어차피 비난받기 때문에 "언제 가도 간다면 오늘이 적절한 날이 아닌가"라고 강변했다.

고이즈미로선 5년을 기다렸다. 재임중 종전기념일에 참배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한 것이다. 15일 피해 이뤄진 그간의 다섯 차례 참배 때와 달리 이날은 연미복 정장을 입었다. 그만큼 작심한 참배였다.

고이즈미가 안팎의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에 따라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아베 신조 관방장관에겐 힘이 더 실리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그동안 신사 참배를 지지해 왔으며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서도 '개인의 판단 문제'라며 우회적인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일본 안에서도 참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지만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참배 모습을 지켜본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에서 반일기류가 거세질 경우 내정 간섭에 대한 불만을 촉발,역으로 고이즈미 지지 세력이 늘어날 수도 있다.

작년 10월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한국에서 반일시위가 번지자 일본에서 총리 지지율은 크게 높아졌다.

이에 따라 고이즈미와 노선을 같이 하는 아베 장관에게 힘이 실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주변국의 반발은 일본의 보수세력 결집을 재촉해 고이즈미 총리 후계자로 '강한 일본' 건설을 내세우는 아베 장관의 인기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읽는 고이즈미 총리가 다음 달 총리 선출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참배를 강행한 것 역시 이 같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5년 전 공약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