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개교 18년을 맞은 서울과학고는 1기부터 10기 졸업생까지 사법시험 합격자를 1명 이상씩 배출했다.
현재 판사 4명에 변호사가 4명.아직 검사는 나오지 않았다.
법무관과 사법연수원생 등 예비 법조인을 합치면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서울과학고 동문은 총 24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학고의 특성상 일단 이공계 대학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안맞아 공학도나 연구원의 길 대신 법전을 택했다는 점이다.
서울과학고 2기인 박석민 변호사(사시42회,서울대 식품영양학과)는 기술고시와 변리사쪽을 준비하다 법의 매력에 빠져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특허전문인 법무법인 다래에 둥지를 틀었다.
박 변호사와 동기인 서울서부지법의 박주영 판사(43회,서울대 산업공학과)는 대학원까지 진학했다가 언니(박선영 전주지법 판사)의 영향을 받아 '자매판사 1호'의 주인공이 됐다.
박 판사와 고교는 물론 대학 학과(서울대 산업공학과) 동기인 박세현 변호사(42회)와 최효종 변호사(44회)는 각각 법무법인 KCL과 세종에서 기업법무 등의 일을 맡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지식재산권 전담부 소속 박상언 판사(42회,5기)는 좀더 특이하다.
서울대 의대를 1년 다니다 중도포기하고 수능시험을 다시 봐 서울대 법대 97학번으로 입학했다.
"수학이 좋아 과학고에 진학했는데 실험보고서를 매일 써야 하는 화학과 생물이 적성에 안맞아 일찌감치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연혁적 사고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수학·물리와 법학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중학교 성적이 전교 5등 이내에 들어야 원서를 내볼 수 있다는 과학고.때문에 서울과학고 출신 법조인들은 법전을 잡은 지 2~3년 만에 사시 2차까지 통과하는 '실력파'들이 대부분이다.
막내인 10기 이재원씨(47회)는 현재 서울대 전기공학부 4학년.3학년 때부터 시험을 준비했다는 그는 아직 졸업 전이어서 연수원 입소를 연기해놓은 상태다.
'학맥'이 여전히 승진과 출세에 적지않은 변수로 작용하는 법조계에서 서울과학고 출신들은 고교와 대학 학과 모두에서 '비주류'인 것은 틀림없다.
전공이 대개 자연계열이나 공과대학인 데다 법조계로 진로를 트는 바람에 고교 동창들과도 교류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
그런데도 "기죽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반응들이다.
박주영 판사는 "법철학이나 이론은 4년간 법대를 다닌 분들에게 뒤질지 모르겠지만 전문기술분야 등 이공계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선 이공계 출신 법조인들이 훨씬 뛰어난 것 같다.
게다가 비법대출신들이 갈수록 늘어 소외감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과학고 출신 법조인인 만큼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이공계쪽에 비전이 안보이니까 법조계로 진출한 것 아니겠느냐" "대학에서 박사를 따도 연구원 생활을 40대까지 버틸 수 없고,대기업체 연구직만 해도 승진에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더러 나왔지만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상언 판사는 "이공계는 법조계에,법조계는 이공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법조 다양화 측면에서도 이공계의 법조 진출은 권장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