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聖哲 <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chungsc@stepi.re.kr >

과학 기술이 전반적으로 소프트화되고 발전의 중심이 물리학에서 생명과학으로 옮겨 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하에서는 섬세하고 소프트한 여성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여성의 과학기술 참여가 중요한 정책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성의 과학적 재능에 대한 전통 과학계의 평가는 비과학적이기 짝이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자가 남자보다 치아의 수가 적기 때문에 훨씬 비논리적이라고 정말 비논리적인 주장을 하였다.

어이없게도 그는 여자의 치아가 실제 몇 개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다윈과 프로이드도 여성은 태생적으로 남성에 비해 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믿고 있었다.

영국 한림원 초대 사무총장인 헨리 올덴버그는 과학을 '남성의 철학'이라고 하였다.

1861년 프랑스의 폴 브로카라는 인류학자는 여성의 뇌가 남성의 뇌보다 200g 정도 적으므로 여성이 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결론 내렸다.

브로카의 제자인 르봉은 여성 뇌의 크기는 고릴라의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를 여성이 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어떤 과학자들은 사람의 과학적 지능을 결정하는 것은 뇌의 전면부인데 여성의 경우 이 부분의 뇌가 덜 발달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해부 결과 이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자 이들은 과학적 지능을 결정하는 것은 뇌의 측면부라고 주장을 바꾸었다.

이러한 편견에 반기를 든 여성도 많지 않았다. 알려진 사례로 영국의 마거릿 카벤디시 백작부인이 있다.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카벤디시 부인은 당시 금녀(禁女)의 모임인 한림원 회원이 되겠다고 나서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667년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과학자로서 인정받는 데 실패하여 그 후로 한림원은 여성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뇌의 크기와 과학적 지능이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세기 초이다. 그제서야 과학자들은 뇌의 크기는 신체의 크기에 따라 다를 뿐이며 사람의 지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따라서 과학적 지능이 성(性)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를 반영한 것일까.

마리 퀴리 부인이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교수가 된 것도 20세기 초인 1906년이었다.

영국 한림원이 여성 과학자를 회원으로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1945년이다.

그러고 보면 이제 와서 여성 과학자의 과학기술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때늦은 구애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