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쓴 책인데 세월이 지나 다시 내놓고 나니 쑥스럽네요. 시간이 많이 흘러간 지금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어린이가 소중하게 간직한 내면의 비밀을 들켜버린 느낌이 듭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자신의 유일한 수필집 '목동의 노래'(가톨릭출판사)를 37년 만에 재출간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정 추기경은 3일 서울 명동성당 옆 집무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주변 분들이 어린 시절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라며 다시 내자고 했다"며 쑥스러워했다.

이 책은 정 추기경이 신학생이 되기 전부터 1961년 사제수품후 수년간 쓴 글들을 모아 1969년 처음 출간했었다.

1994년 개정판을 냈다가 올해 추기경 서임을 기념해 삽화를 곁들여 새롭게 선보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명동성당을 뛰어다녔던 어린 시절부터 갓 사제가 된 시절의 솔직하고 올곧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정 추기경은 책에서 "한 번 땅바닥에 엎드려 세상에 죽고,두 번 더 엎드려 신품을 받고 나면,모두가 '아버지'라고 불러준다.

우리말로는 '신부님'.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그냥 '아버지'라 부른다.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처음에 '아버지'라고 불렸을 때에는 참으로 그 한마디 말에 전율을 느꼈다.

아버지,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구나…"라며 사제로서의 사명감을 되새긴다.

신학교 시절 학교 마당에 만든 연못 앞에선 "내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는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날마다 이 연못에 나를 비추어 손질하리라"고 다짐한다.

"이 책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그'라고 3인칭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내 욕심 때문에 판단이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나'를 내세우다 보면 내 분수를 모르고 자신의 욕심과 욕망이 글에 섞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객관적 진리보다 주관적 주장이 앞서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정 추기경은 틈만 나면 책읽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40여권의 저서와 역서를 낼 만큼 왕성한 집필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정 추기경은 "부제수품을 한 뒤 같은 방을 썼던 박도식 신부(작고)와 1년에 한 권씩 책을 쓰자고 약속한 뒤 억지춘향식으로 숫자는 맞춘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15권에 달하는 '교회법 해설' 등 정 추기경의 저서들은 만만한 것이 없다는 게 교계의 중평.올해 들어서도 '민족 해방의 영도자 모세'(상권)를 쓰던 중 추기경에 서임됐고 지금은 하권을 집필중이다.

"모세는 황야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끈 분입니다. 모세는 어떻게 그런 길을 만들며 갔을까 하고 책을 쓰던 중 추기경이 됐지요.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줘야 할 처지가 되고 보니 하느님께서 미리 그렇게 이끌어주신 것 같습니다."

정 추기경은 "상대방의 단점을 찾는 이는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만 장점을 찾는 이는 남들을 기분좋고 편안하게 한다"면서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이를 통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기쁨과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