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 패배자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올해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만만찮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유례없는 경영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조가 19년째 '습관성' 파업에 나선 데다 회사측도 노조의 압박에 밀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선에서 협상을 끝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도 노사가 상생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한 채 구태를 반복함에 따라 내년 노사관계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에는 △산별 교섭과 △복수 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3대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노사 갈등이 더욱 증폭할 가능성까지 예고되고 있다.


○심각한 파업 후폭풍 예고

이번 파업이 남긴 상처들은 깊다.

현대차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26일까지 한 달간 이어진 파업으로 총 9만여대를 생산하지 못해 1조3000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

손실 금액으로만 보면 25일간 파업이 벌어져 정부가 긴급조정권 발동까지 검토했던 2003년(1조3106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수출할 차가 없어 선적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빚어지는 등 예년보다 파업 피해가 심각했다.

신형 아반떼 등 인기있는 신차는 두 달씩 기다려야 받을 수 있어 상당수 고객들이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업체로 발길을 돌린 상태다.


○늘어나는 비용 부담

현대차는 이번 협상에서 노조측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함에 따라 적잖은 추가 비용 부담을 떠안았다.

특히 생산직 근로자에 대한 호봉제 도입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매년 2호봉씩 승급돼 생산직 근로자들의 임금(기본급)이 임금협상과는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GM대우가 생산직에 대한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번에 현대차가 합의한 내용과는 다르다.

GM대우의 경우 인사 및 실적 평가에 따라 1~3호봉까지 차등적으로 올려주고 있다.

협상 타결을 명분 삼아 각종 명목의 성과금을 나줘주는 관행도 회사측에는 부담이다.

현대차는 협상 타결에 따라 △경영목표 달성과 종업원 사기 진작을 위한 성과금 100%(통상급 기준)과 △하반기 생산목표 달성을 위한 별도 격려금 50%를 지급키로 했다.

또 품질 및 생산성 향상 격려금(100만원)과 품질(IQS) 목표 달성 기념 격려금(100만원)도 나눠주기로 했다.

여기에 올 생산목표(176만7000대)를 100% 초과하면 150%의 성과금을 지급한다.

현대차는 작년에도 임단협 타결 때 300%의 성과금과 200만원의 타결 일시금을 지급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같은 수준의 성과금과 일시금을 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성은 끌어올리지 않은 채 매년 인건비 부담만 늘어날 경우 투자 재원이 소진돼 회사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내년이 더 문제

올 협상에서 현대차 노사가 상생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더욱 큰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년 대기업 노조의 역사를 마감하는 올해도 변함없이 초강경 파업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산별전환에 성공함에 따라 내년부터 파업 횟수와 교섭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복수 노조 설립 허용에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까지 시행되면 산업 현장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우려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협상에서 현대차가 고질적인 파업 관행 및 비효율적인 교섭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 것은 노사 모두에 두고두고 큰 짐이 될 것"이라며 "다른 기업의 교섭에도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