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노조원, 선뜻 찬성하지 않는 분위기

정부 "부당차별 시정해야..재정부담 많지 않아"

정부 투자.출자 기관들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움직임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공부문 인건비를 줄이고 조직의 효율성을 꾀하는 정부의 공공분야 혁신 방향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26일 정부 투자.출자 기관들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진행된 뒤 경기가 악화되면 대규모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조직의 생산성이 떨어져 중장기적인 고용력이 축소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또 정부와의 협의과정에서 정원과 인건비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공기업 노조들도 기존 정규직 노조원들의 불만을 무마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뜻 찬성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며 재계도 공공부문의 이런 움직임은 민간부문까지 영향을 준다면서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는 좀 더 강화해야 하고 정규직의 고용 유연성은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평균임금의 30%수준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많은데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현실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 해결방안을 놓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 기관에 따라 정규직화 대상 대규모
대형 공기업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비정규직 인원이 상당히 많은 편이어서 인력조정 과정에서 총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작년말 현재 비정규직이 2천514명으로 정규직 3천979명 대비 63.2%를 점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톨게이트 징수요원, 고속도로 안전순찰, 도로정비, 일반사무 등에서 일하고 있어 정규직 전환대상에 해당된다고 도로공사는 밝혔다.

공사 관계자는 "정원과 인건비를 확대하면서 정규직으로 바꿔주면 당장 기관의 규모가 커져 좋을 수도 있지만 외환위기 때처럼 경영이 불안해지면 구조조정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공사의 비정규직은 작년 3천20명에서 지난 4월에는 2천917명으로 줄었으나 주로 승차권을 판매하는 역무원 분야와 차량정비.시설.전기 분야 등에서 일하고 있어 1천900명 가량이 정규직화 대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공사 관계자는 "정규직화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나와야겠지만 예산의 상당한 증가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아웃소싱을 확대할지, 별도 직종을 만들어 정규직화할지 등의 여러 방안을 검토해 관계당국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공기업 "부가가치.효율성도 감안해야"
공기업들은 아울러 생존을 위해서는 자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도 감안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농촌공사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필요하지만 효율성 향상과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차원에서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자원공사의 작년말 비정규직은 수질분석.시설운영 보조인력 등 184명으로 전년말의 124명에 비해 늘어났다.

공사 관계자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려면 정부가 정원을 확대해줘야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해당 업무가 일시적인지, 아니면 상시적인지를 따지는 직무분석이 철저히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폐공사 관계자도 "비정규직이 2004년말 7명에서 작년말 98명으로 늘어났으나 이는 새 화폐 제조를 위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구조적으로는 전자화폐가 늘어나고 동전수요는 줄어들고 있어 정규 인력마저 교육을 보내거나 희망퇴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당정의 정규직화 움직임은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작년말 현재 비정규직은 178명인데, 주로 단순업무인 텔러 분야 일을 하고 있다"면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신규채용이 훨씬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공기업 노조들도 부담스러운 분위기
공기업 노조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겉으로는 환영하고 있지만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정규직 노조원들이 선뜻 찬성하는 분위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공기업의 노조 관계자는 "비슷한 업무를 한다면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따라 정부의 정규직화 방향을 환영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일부 정규직 노조원 중에는 `우리는 시험을 보고 경쟁을 해서 입사했는데 그냥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수 있느냐'면서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정규직 전환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공기업 노조의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노동계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정부는 예산을 충분히 주고 인력운용의 자율성도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하는데 얼마나 가능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불확실한 만큼 의견 개진이 조심스럽다"고 전제하고 "정규직화는 결국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고용여력을 낮출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상시적인 업무에 한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다 급여수준에서도 차이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재정부담이 크지 않다"면서 "기존 정규직의 고용 탄력성은 확대하고 비정규직은 좀 더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비정규직-정규직 임금격차 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은 정규직에 비해 상당히 낮다.

일반적으로 정규직은 기본급 외에 상여금.수당.복리후생비 등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총액에 대한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급여가 정규직의 30%수준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화폐 생산기계를 가동하고 제품검사를 하는 업무의 보조원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정규직 평균임금의 3분의 1수준에도 못미친다"고 말했다.

철도공사는 차량정비.시설.전기 등의 분야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급여는 정규직 말단인 6급 1호봉(경조사비 등 복리후생 제외)의 55∼70% 수준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사의 경우 복리후생비까지 감안한 정규직 평균으로 계산하면 비정규직의 급여는 훨씬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산업은행 관계자도 "비정규직의 임금은 당사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지만 대체로 정규직 평균의 40% 안팎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임금은 동일한 업무분야 정규직의 80∼90% 수준이며 복리후생비, 성과급 등을 감안하면 급여차이는 더욱 확대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신호경 기자 keunyoung@yna.co.kr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