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속도의 몽골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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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는 요즘 칭기즈칸 축제가 한창이라고 한다.
몽골 전 부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쿠릴타이(족장회의)에서 테무친이 칭기즈칸이라는 칭호를 부여받고 몽골제국 탄생을 선언한 지 올해로 꼭 800주년이 되는 까닭이다.
몽골정부는 국민 자긍심을 높이는 한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다.
칭기즈칸의 대형 동상을 건립하고, 기마병들의 전투 장면도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리얼하게 재연하고 있다.
울란바토르 공항을 칭기즈칸 공항으로 개명했고 수도 이름을 아예 칭기즈칸 시티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세계적으로도 파괴적 압제자로만 치부돼왔던 칭기즈칸을 창조적 건설자로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다른 민족을 침략하고 학살한 측면도 있지만 인류 문명발달에 기여한 공로는 그것대로 평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동양과 서양의 문명교류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몽골에 의해서라고 한다.
정책적으로 무역을 장려한 까닭에 물자 정보 사람 기술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인류문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이다.
'칭기즈칸,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쓴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잭 웨더포드는 칭기즈칸이야말로 동서양 교류를 촉진시켜 근대문명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아무튼 몽골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제국을 일으키고 150년 동안이나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지금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몽골은 기동력(속도), 조직, 정보체계에서 압도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최대무기는 기동력이었다.
초원에서 어릴 때부터 말과 함께 살아온 몽골기마병들의 이동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이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게릴라식 치고빠지기 전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보병에 의존하는 다른 나라 군대를 손쉽게 제압했다.
원정을 떠날 때도 말이 지치면 갈아탈 예비 말까지 끌고 다니며 기동력을 유지했다.
속도의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분초(分秒)를 다투는 정보통신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칭기즈칸 군대의 또 다른 강점은 조직체계가 대단히 효율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십호제 백호제 천호제 등으로 조직을 십진법(十進法)식으로 질서정연하게 재구성했고 신분과 민족을 가리지 않고 능력만 있으면 지휘관으로 중용했다.
그런 군대는 일사불란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칭기즈칸이 수많은 CEO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가 도입한 역참(驛站)제 또한 대제국의 틀을 유지시켜준 동력이다.
먼 길을 이동하다 잠시 쉬거나 말을 갈아탈 수 있게 주요 지점마다 설치된 역참은 광활한 제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사람과 정보의 네트워크화를 이뤄내 지구촌을 하나로 묶은 인터넷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모으는 것은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경쟁력의 우위만 확보하면 얼마든지 세계 최고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점일 것이다.
칭기즈칸 군대는 초창기 10만명에 불과했고 백성 또한 100만명에 그쳤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클 수밖에 없고 과연 우리의 경쟁력은 어디쯤 와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몽골 전 부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쿠릴타이(족장회의)에서 테무친이 칭기즈칸이라는 칭호를 부여받고 몽골제국 탄생을 선언한 지 올해로 꼭 800주년이 되는 까닭이다.
몽골정부는 국민 자긍심을 높이는 한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다.
칭기즈칸의 대형 동상을 건립하고, 기마병들의 전투 장면도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리얼하게 재연하고 있다.
울란바토르 공항을 칭기즈칸 공항으로 개명했고 수도 이름을 아예 칭기즈칸 시티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세계적으로도 파괴적 압제자로만 치부돼왔던 칭기즈칸을 창조적 건설자로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다른 민족을 침략하고 학살한 측면도 있지만 인류 문명발달에 기여한 공로는 그것대로 평가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동양과 서양의 문명교류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몽골에 의해서라고 한다.
정책적으로 무역을 장려한 까닭에 물자 정보 사람 기술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인류문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이다.
'칭기즈칸,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쓴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잭 웨더포드는 칭기즈칸이야말로 동서양 교류를 촉진시켜 근대문명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아무튼 몽골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제국을 일으키고 150년 동안이나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지금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몽골은 기동력(속도), 조직, 정보체계에서 압도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최대무기는 기동력이었다.
초원에서 어릴 때부터 말과 함께 살아온 몽골기마병들의 이동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이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게릴라식 치고빠지기 전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보병에 의존하는 다른 나라 군대를 손쉽게 제압했다.
원정을 떠날 때도 말이 지치면 갈아탈 예비 말까지 끌고 다니며 기동력을 유지했다.
속도의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분초(分秒)를 다투는 정보통신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칭기즈칸 군대의 또 다른 강점은 조직체계가 대단히 효율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십호제 백호제 천호제 등으로 조직을 십진법(十進法)식으로 질서정연하게 재구성했고 신분과 민족을 가리지 않고 능력만 있으면 지휘관으로 중용했다.
그런 군대는 일사불란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칭기즈칸이 수많은 CEO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가 도입한 역참(驛站)제 또한 대제국의 틀을 유지시켜준 동력이다.
먼 길을 이동하다 잠시 쉬거나 말을 갈아탈 수 있게 주요 지점마다 설치된 역참은 광활한 제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사람과 정보의 네트워크화를 이뤄내 지구촌을 하나로 묶은 인터넷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모으는 것은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경쟁력의 우위만 확보하면 얼마든지 세계 최고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점일 것이다.
칭기즈칸 군대는 초창기 10만명에 불과했고 백성 또한 100만명에 그쳤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클 수밖에 없고 과연 우리의 경쟁력은 어디쯤 와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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