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번 비는 앞으로 2~3일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5일 서울 화곡동의 주택가.

TV 뉴스를 통해 비소식을 전해 들은 한 남성이 가방을 꺼내 며칠간 입을 옷가지를 넣기 시작했다.

세면도구와 야전침대까지 챙긴 그는 집을 나서 어디론가 차를 몰았다.

임시 대피소로 향하는 침수지역의 수재민 얘기가 아니다.

기상정보업체 '케이웨더'의 박흥록 기상 컨설턴트(35)는 '물폭탄'이 전국을 휩쓸고 간 지난 15~17일 3일간 이처럼 짐을 싸서 집을 나와 아예 회사에다 살림을 차렸다.

"이번처럼 많은 비가 오면 건설교통부 하천관리과 등 공공기관과 비에 쓸려가 버린 농작물 대신 대체 물량을 알아봐야 하는 유통업체들,파손된 집과 차량에 대한 보상을 책임져야 하는 보험사 보상팀 등에서 끊임 없이 상담 전화를 걸어오기 때문에 집에 들어갈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는 휴가를 계획했다가 케이웨더에서 제공하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고 "이번 연휴에 떠나는 것은 정말 무리겠느냐"고 물어오는 일반인 고객도 있었단다.

이런 전화까지 모두 합쳐 박 컨설턴트가 3일간 받은 전화만 무려 500여통에 달한다.

최근 들어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집에 못 들어가는 날도 그만큼 더 늘었다.

"기상청의 포괄적인 예보보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날씨 상담을 원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 유통업체의 경우에는 날씨가 고객들의 수요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기상컨설팅이 꼭 필요한 곳이죠."

케이웨더로부터 날씨 정보를 받고 있는 GS홈쇼핑은 지난 주말 당초 예정됐던 '바캉스 여행 상품'을 편성에서 제외하는 대신 제습기능이 강화된 에어컨을 대체 투입했다.

이번 비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어서 편성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박 컨설턴트의 조언을 편성팀이 받아들인 결과다.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한 덕에 GS홈쇼핑은 지난 주말 3일간 20억원어치의 에어컨을 파는 대박을 터뜨렸다.

한 백화점 농산물 매입팀에서는 박 컨설턴트에게 "밭에 배추가 남아 있는 지역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강원 지역에 내린 비로 계약 재배 농가의 채소밭이 상당수 휩쓸려 가 상품 조달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 컨설턴트는 시·군 단위로 분석되는 단기 예보와 농림부의 채소 산지 현황 자료를 분석해 "경북 울진으로 가라"는 답을 내줬다.

박 컨설턴트는 가끔 '택일'도 해준다.

2002년 410만명의 관객이 들었던 영화 '집으로'엔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촬영이 산골 마을에서 이뤄지다 보니 살수차를 동원할 수 없어 난감해 하던 촬영팀이 회사로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해당 지역에 소나기가 여러번 지나갈 것으로 보이는 날을 알려줬죠." 그 덕에 촬영을 대본대로 차질 없이 끝마칠 수 있었다.

당시 영화 '집으로'의 제작부를 총괄했던 송현영 튜브픽쳐스 프로듀서는 "비 내리는 장면을 찍을 때 리얼리티를 살리려면 진짜 비오는 날을 골라 촬영하는 게 가장 좋다"며 "이 때문에 영화 제작에도 최근 기상 컨설턴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박수현 인턴기자(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