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밤 11시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수재민'들의 임시숙소가 된 한강전자공예고 교실 안.
양평2동 수해지역 일대의 21가구 57명이 대피해 있는 이곳에서 주민들은 이틀째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그칠줄 모르는 빗줄기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장마전선이 남하하면서 이날 저녁까지 소강상태를 보였던 비가 밤이 되면서 다시 굵어질 조짐을 보이자 주민들은 "하늘이 원망스럽다"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었다.

주민 윤모(46)씨는 "낮에 집에 가서 흙탕물에 젖은 옷과 가재도구들을 씻어 널어놓고 왔는데 비가 계속 오는 걸 보고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어 밤늦게 다시 집에 다녀왔다"며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주민 박모(38)씨도 "어제만 여기에 있고 오늘은 집에 들어가려 했지만 집안이 눅눅해 도저히 잘 수가 없더라"면서 "제발 비가 그만와야 하는데 불안해서 잠도 안온다"며 한숨지었다.

임시숙소인 한강전자공예고, 당산초교 등으로 나뉘어 최대 900명에 달했던 양평2동 대피 주민들은 복구작업이 진행되면서 대부분 귀가해 현재 한강전자공예고에만 50여명이 남아있는 상태다.

주민들은 학교 2, 3층 교실의 책상과 의자를 밖으로 내놓고 바닥에 두꺼운 스티로폼을 깐 뒤 얇은 이불을 덮은 채 불편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일부 주민은 물에 잠긴 집안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장판, 벽지를 다 뜯어내는 등 하루종일 계속된 복구작업에 지쳐 밤 10시가 되기도 전에 기진맥진해 곯아 떨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학교에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세수, 샤워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편을 겪었고 이 때문에 피부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노인도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4학년짜리 두 아들과 함께 밤을 지샌 주민 황모(36)씨는 "10년 간 이 동네에서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며 "아이들을 씻기지도 못하고 책가방도 못 챙겨왔는데 당장 내일 학교에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양평2동 수해현장에는 이날 밤 늦은 시각까지 복구작업이 한창이었다.

특히 유실됐던 안양천 둑 보수공사 현장엔 포크레인 등 중장비와 인력 100여명이 투입돼 밤새 복구가 진행됐다.

서울시 기동대 소속 전ㆍ의경 300여명과 영등포구청 공무원, 자원봉사단 등 500여명도 이날 낮 이 지역 복구작업을 도왔고 상인들도 가게와 집기 정리, 청소 등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폐허가 되다시핀 한 집을 완전히 복구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양평2동 일대엔 전기와 가스 공급도 중단된 상태여서 주민들의 불편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민 김모(22)씨는 "전기,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오늘 두끼 식사를 모두 편의점에서 산 햇반, 즉석미역국 등으로 떼웠다"며 "언제까지 이래야 할지 걱정"이라고 하늘을 원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