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철강기지인 포항 포스코 본사가 전문건설 노조에 의해 이틀째 점거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포스코는 14일 전문건설 노조원 3000여명이 지난 13일 오후 2시30분 포항시 남구 포스코 본사 1∼3층을 점거한 데 이어 14일 오전 11층 전 층을 장악해 본사 업무가 전면 마비됐다고 밝혔다.

포스코 본사가 노조원들에 의해 점거당한 것은 1968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600여명의 본사 직원 중 전날 밤 감금상태였다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섭외 자재 등 관리팀 간부 6~7명이 본사 내에 남아 전산 등 회사 중요 시설을 보호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중국 출장 중이던 윤석만 사장을 긴급히 불러들여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비상이 걸렸다.

이구택 회장 등 경영 수뇌부가 업무를 보고 있는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도 본사 점거 상황을 매시간 체크하면서 전문건설 노조원들의 상경 투쟁에 대비하고 있다.

다만 제철소는 정상 가동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정부의 '친노동 정책'에 편승한 불법 점거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적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점거농성 왜 발생했나

본사를 점거 중인 노조원들은 포스코가 각종 설비의 건설·운영을 위해 계약한 30여개 전문건설업체 소속 근로자들이다.

조합원 수는 4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포스코가 발주하는 공장·설비분야 24개 공사현장의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다.

건설노조가 포스코를 점거한 표면적인 이유는 포스코가 비노조로 구성된 대체 근무자를 투입하는 등 파업을 방해했다는 것.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사용자측인 전문건설협회에 △임금 15% 인상 △토요일 유급휴가 보장 △재하도급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협상이 진척이 없자 엉뚱하게 발주업체인 포스코를 걸고 넘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사용자측은 임금 인상안에 단협안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상액이 무려 50%가 넘어 도저히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행정업무 전면 마비

건설노조의 본사 점거로 포스코는 행정업무와 공사가 전면 마비됐다.

포스코 관계자는 "파이넥스 공장 등 포스코 내 30여개 기계·전기설비 사업장의 신·증설 공사가 늦어지면서 하루 100억원가량의 피해액이 발생하고 있다"며 "점거사태가 장기화돼 하루 2만5000여t에 이르는 제품 출고에 차질을 빚을 경우 매일 130억원 정도의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측은 또 글로벌 철강 메이커를 지향하는 포스코의 대외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포스코와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없는 전문건설 노조원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해 업무까지 방해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행태는 해도 너무 한다"고 토로했다.

포스코의 다른 관계자는 "노사협상의 당사자도 아닌 우리가 왜 이렇게 공격을 당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03년 5월에도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포스코 정문 일대를 원천 봉쇄해 전국 산업체로 가는 철강 운송 물류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지 3년여 만에 이러한 사태가 재연됐기 때문이다.

공권력 투입 방침

노조원들은 본사 출입문과 현관 등에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다.

특히 건물 점거 후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무장한 채 공권력 투입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으며 옥상 투쟁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포스코 본사 건물 주변에 경찰병력 50개 중대 5000여명과 소방차 구급차 등을 배치했으며 점거농성 중인 노조원들을 상대로 자진 해산을 유도한 뒤 여의치 않을 경우 공권력을 투입할 방침이다.

반면 노조측은 "포스코의 공권력 투입 요청과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공개사과와 사용자측이 성의있는 협상태도를 보일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광양지역 건설노조원 2000여명도 연대파업을 결의하고 포항 건설노조 파업현장에 속속 합류하고 있어 포항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포항=하인식·김홍열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