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시작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에서 마지막 날 회의가 무산되는 등 양국 간 힘겨루기로 인해 협상이 갈등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양국은 상품 분야의 양허안(개방안) 틀에 합의하고 8월 중순까지 양허안을 일괄 교환키로 합의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한국의 약가제도 등을 놓고 충돌을 빚으면서 전체 협상 자체가 경색되는 모습이다.

외교통상부는 2차 협상 마지막 날인 14일 열릴 예정이던 상품,투자,서비스,환경 등 4개 분과 회의를 우리측이 전면 취소해 열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1일 의약품 작업반 협상에서 한국측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철회할 수 없다고 밝히자 미국측이 의약품 회의뿐 아니라 13일 예정됐던 무역구제,서비스 분과 회의에도 불참한 데 따른 대응조치였다.

무역구제 분과에서는 반덤핑,서비스 분과에서는 전문직 비자쿼터 등 한국측 요구사항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다만 양국은 이미 합의한 농산물,상품,섬유 양허안의 8월15일 이전 일괄교환은 예정대로 진행키로 했다.

또 3차 협상도 당초 계획보다 1주일 앞당겨 9월4∼8일 미국에서 개최한다.

○의약품 '시한폭탄'으로 부상

의약품은 농산물,자동차와 함께 미국측의 공세가 예상되는 분야였다.

특히 지난 5월 초 보건복지부가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해 건강보험 적용대상에 등재시키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미국측은 불만을 표시해왔다.

미국측은 지난 2월 협상 출범을 선언한 뒤 협상 대상인 약가제도를 대폭 변경한 것에 대해 '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의약품 분과 첫날 회의에서 한국측이 이를 거부하자 의약품 분과에서 퇴장한 데 이어 한국측 요구가 많은 무역구제 분과와 서비스 분과에 불참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한국측 협상단 관계자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추진해 온 점을 미국측에 설득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국 간 원만한 타협 없이 복지부가 예정대로 오는 9월 새 약가제도 시행에 들어갈 경우 원만한 협상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양허안은 합의대로 3차 협상 전까지 교환

2차 협상이 파행적으로 종결됐지만 전면적인 협상 결렬의 단계로 보기는 어렵다.

협상단 관계자는 "마지막 날 회의 취소를 결렬로 보는 것은 무리이며 전체적인 진행에 약간 차질이 빚어졌을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협상 중 서로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어날 수 있는 힘겨루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양측은 이미 합의한 양허안 교환일정이나 3차 협상 일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밝혀 강한 협상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원산지 특례인정,쌀 시장 개방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3차 협상에선 대립 격화될 듯

상품 양허안이 8월에 교환되고 서비스와 상품 분야에서 상대방에 대한 개방 요구를 담은 관심리스트(Request List)가 3차 협상 전까지 주고받으면 협상은 본 궤도에 오른다.

그러나 양측의 민감분야인 농산물과 섬유 분야는 양허안의 틀조차 합의가 불가능했던 만큼 주고받기 협상에선 더욱 난항이 불가피하다.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는 "협상은 차수를 더해갈수록 의견차가 생기고 대립,격화될 것"이라며 "3차 때는 교환된 양허안과 관심리스트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가며 4,5차 때는 우선순위를 정해 주고받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