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 소설가 >


벅셔 헤서웨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인 워런 버핏이 전 재산의 85%인 370억달러(36조원)를 5개 자선단체에 기부키로 했다는 소식은 세상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며 신문배달 등을 통해 모은 9800달러를 밑천으로 50년 동안 50조원에 달하는 돈을 모은 입지전(立志傳)적 인물이라거나,1958년에 구입한 3600만원 상당의 집에서 지금껏 살고 있다거나,오래된 중고차를 몰고 20달러짜리 스테이크 하우스를 자주 찾는 검소하고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버핏으로부터 받게 된 충격파의 진원지(震源地)는 엉뚱한 곳에 있다.

돈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버핏과 근본적으로 비교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겐 그렇게 큰돈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테지만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안 해 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하는 상상과 뭐가 다르겠는가.

버핏이 우리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돈과 인생의 상관(相關)관계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을 사로잡거나 구속하는 결정적 요인으로서의 돈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다는 세상인데 돈을 무시하고 어찌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존재에게 돈은 생명수이다. 삶을 연장하거나 끊어버릴 수 있는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속성이고,그것을 그렇게 만든 것도 돈이 아니라 인간이다.

돈이라는 말이 칼 '도(刀)'에서 왔다는 일설도 그래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네가 그것을 다루지 못하면 그것이 너를 다루게 될 것이다(You control it, or it controls you)"라는 돈에 관한 서양 격언도 또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버핏이 인생의 말년에 멋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가 돈을 인생 위에 올려놓지 않고 돈 위에 인생을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그가 보통 사람의 5배에 달하는 독서를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으나,아무튼 그 지점에서 그는 보통사람들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우리 사회에도 버핏처럼 훌륭한 결정을 내린 분들이 많다.

평생 김밥장사를 해서 모은 돈을 대학에 기부하거나,평생 삯바느질로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고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이 계셨다.

뿐만 아니라 돈이 아니더라도 남을 위해 평생 몸으로 봉사하거나 희생하신 분들도 숱하게 계셨다.

그런 분들이 몇 천억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헌납(獻納)하겠다고 나서는 이 나라의 기업가들보다 훌륭한 것은 인생 위에 돈을 얹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돈이 아니라 회사 이익금으로 몇 천억이 아니라 몇 조를 기부한들 무슨 빛이 나겠는가.

선진국은 개인 기부가 70%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업 기부가 70%에 달한다.

기업은 기부해도 기업가들은 기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투명하고 건실한 기부처가 부족한 것도 또한 문제이다.

버핏이 370억달러 중 60억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빌 게이츠의 재단에 기부하는 것도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신과 연관된 재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훌륭한 재단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성숙한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珍風景)이 아닐 수 없다.

부의 세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국내 재벌들의 관행을 돌이켜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인생 위에 돈을 얹지 않고 돈 위에 인생을 얹은 워런 버핏의 멋진 선택.그는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지만 그것은 잃은 것도 아니고 또한 비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죽은 뒤에도 가져갈 수 있는 불멸(不滅)의 재산을 얻은 것이다.

나의 인생은 지금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지 우리 모두 서둘러 점검해 볼 일이다.

돈 밑에 있는가,돈 위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