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위기다.

자동차 한 대당 1550달러를 직원들의 의료비 등으로 지출해야 한다니 위기는 어쩌면 당연하다.

애당초 한 발을 묶은 채 외국사와 경쟁해야 하는 꼴이다.

그러니 GM의 위기가 주는 교훈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이 명확하다.

그런 GM이 이젠 '사냥감' 신세가 됐다.

일본의 닛산과 프랑스 르노가 제휴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두 회사가 GM의 지분 10%씩을 각각 인수하는 형식으로 공룡 자동차그룹을 만들자는 거다.

1908년 설립 이후 뷰익 캐딜락 시보레 등을 인수하며 자동차 왕국을 일궜던 GM으로선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사냥꾼'에서 졸지에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GM이 더 뼈아파하는 것은 소비자의 외면이다.

지난 4월 GM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에 갔었다.

GM이 주최하는 행사장에 주차된 차의 반 이상이 GM자동차가 아니었다.

상당수는 일본차와 한국의 현대차였다.

"왜 GM차가 적으냐"고 물으니 "손님들이 찾지 않으니까"라는 설명이다.

한때 GM차를 타지 않으면 '매국노'취급을 당했던 곳이 디트로이트였다.

그런 도시에서조차 이제 'GM은 그렇고 그런 자동차중 하나'라는 인식이 퍼졌으니 GM의 위기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 GM에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은 노조의 변화다.

전미자동차노조연맹(UWA)은 '강성의 대명사'다.

노조와 합의하지 않으면 공장 하나 이전하기도 힘들다.

직원 해고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노조가 지난달 열린 총회에서 "역사상 최대 위기에 빠진 미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 노조가 전통을 깨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변화와 희생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덕분에 GM은 올해 3만5000명을 조기퇴직시키기로 하는데 성공했다.

지난달 29일 뉴욕 맨해튼에서는 한국투자환경설명회(IR)가 열렸다.

화제는 단연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었다.

이 위원장은 200여명의 외국인 투자자들게게 "만일 노사문제 때문에 투자를 주저한다면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라"며 "한국에 투자했다가 노사문제가 생기면 한국노총이 직접 나서 해결하겠다"고 역설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위원장의 연설이 끝나자 한 외국인 투자자가 손을 들었다.

"자동차업종 외에 노사문제가 심한 업종이 무엇이냐"는 게 질문의 요지.뒤집으면 "자동차업종이 만성적인 노사분규 사업장이라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때마침 현대차 노조가 부분 파업에 들어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현대차 노조가 다시 부분파업을 벌이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회계부정파문 등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그러나 외국에서 현대차는 삼성전자 LG전자 등과 더불어 '한국,그 자체'로 인식된다.

현대차에 분규가 벌어지면 모든 한국의 노조가 분규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한국노총 위원장의 "믿어달라"는 호소에 '혹시나' 했던 외국인들조차 '역시나' 하고 고개를 돌리고 만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다.

GM의 위기와 현대차의 최근 모습을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에서 배운다'고도 했다.

잘만 배우면 현대차는 GM의 위기를 답습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영춘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