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碩濟 < 소설가 >

급식 사고로 집단 식중독이 발생하면 맨 먼저 의심받는 것이 돼지다.

이번 경우는 재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하수에 있던 노로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설(說)이 유력하다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식 현장에서는 툭 하면 수상쩍다는 혐의를 받아온 돼지고기부터 걷어치우고 있다.

돼지는 아무거나 잘 먹는 식욕 때문에 욕심 사나운 동물처럼 여겨지고 있으나 이는 오해다.

돼지는 같은 우리 안에서 먹이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 법이 없다.

또한 돼지는 더러운 것을 싫어한다.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어서 물에 몸을 적셔서 열기를 식히는 까닭에 시궁창이나 진흙탕에 뒹구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돼지는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서 체내의 수분을 오줌으로 배출한다.

배설하는 곳을 따로 만들어주면 발달된 후각으로 냄새를 맡아서 그곳에만 배설하고 누울 자리는 깨끗하게 보존한다.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돼지와 함께 살아왔다.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는 부여에 '저가'라는 벼슬이 있어 마가 우가 구가와 함께 각각 네 방면의 지역을 맡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돼지는 임신기간이 114일로 소의 280일에 비해 훨씬 짧으며 한 배에 여섯 마리에서 열 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다.

암컷은 생후 8개월에서 10년까지 새끼를 가질 수 있고 젖을 떼면 한 달 만에 발정이 와서 1년에 두 번 새끼를 낳을 수 있으니 돼지꿈이나 돼지저금통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넘치던 몇십년 전,구정물과 음식찌꺼기를 주어가며 몇 마리씩 돼지를 키우던 시절에는 돼지가 중고생들의 학자금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고생들은 추수 끝난 밭에서 주워온 고구마나 감자 이삭,지게작대기로 두들겨 잡은 뱀이며 개구리에 동생들의 변까지 삽으로 끌어다 돼지 우리 속으로 던져 주면서 잘 자라기를 빌었다.

돼지가 희망이고 생명이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돼지는 '규모의 경제'만을 추구하는 대량사육시설 속에서 항생물질과 호르몬이 첨가된 사료를 먹고 생장(生長)하게 됐고 이에 따라 투입과 산출의 수식이 적용되는 '식자재'로 취급받게 되었다.

지금의 중고생들 역시 돼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뭘 먹고 사는지 보지도 못하고 단순한 식자재 소비자가 돼버린 느낌이다.

중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급식 사고는 지나치게 값싼 급식단가와 업체가 자기 부담으로 학교에 급식 시설을 설치해주는 관행 때문에 생긴 것이다.

급식 단가가 싸니까 싸구려 식자재를 쓸 수밖에 없다.

시설비를 투자한 업체들은 위탁 계약이 해지되기 전까지 빨리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돼 있다.

결국 맛없고 값싼 재료를 쓸 수밖에 없고 누명은 말 못하는 돼지,아니 식자재가 덮어쓴다.

사고가 났든 안 났든 밥은 매일 먹어야 한다.

지금 당장 학교와 업체,학부모와 학생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급식 체계와 단가를 도출(導出)해내는 것이 시급하다.

단가가 높아져서 학부모의 부담이 늘어난다면,급식 시설을 학교에서 갖추는데 지금의 등록금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국가에서 일부 혹은 전부를 부담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를 기르는 데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게 제대로 된 국가인가? 국회는 무엇 하는 곳인가? 국회 구내식당에서 집단 식중독 사고가 안 나면 중고생 수천명이 쓰러져도 상관없는가?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손이 낭랑(朗朗)하게 글 읽는 소리만큼 듣기 좋은 성음은 없다'는 말이 있다.

논둑이 성해야 물이 차는 법이고 제대로 먹고 나서야 글도 읽을 수 있다.

말 못 하고 못 알아듣는 돼지도 알 만한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