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서울 삼성동 동부빌딩.김준기 회장을 비롯한 동부그룹 각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과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룹의 경영현안을 논의하는 경영혁신전략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새로 영입된 삼성 출신 임원들과 동부의 기존 임원 간에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삼성 출신 A임원이 "동부그룹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게 틀이 없고 잘못됐다"고 말하자,기존 임원들의 얼굴이 벌개진 것.A임원과 기존 임원들은 회의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설전을 벌이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시스템 경영' 실현을 위해 삼성그룹 출신 임원을 대거 영입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동부그룹이 외부 인재를 대거 영입하며 추진하고 있는 경영체질 개선 과정에서 성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잦은 외부 인재 수혈을 둘러싸고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며 시스템 경영체제 완성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특정그룹 출신이 대거 영입되면서 기존 임직원들과의 불협화음만 낳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임직원은 외부 영입인사 중 삼성 출신 임원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성과주의와 자율책임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경영'으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김 회장의 경영방침이 낳고 있는 '빛'과 '그림자'인 셈이다.

○물갈이 수준의 외부 수혈

동부그룹은 6년 전부터 삼성 등 타 그룹 임원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김준기 회장은 2001년 7월 삼성 비서실 상무와 삼성SDS 대표를 지낸 이명환 ㈜동부 부회장을 영입하면서 '시스템 경영' 확립을 선언했다.

유난히 보수적인 '사풍(社風)' 때문에 진취적이고 공격적이지 못했던 동부의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게 당시 김 회장의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동부는 지난 6년간 공채기수 중심의 '순혈주의'를 버리고 외부 핵심인력을 대거 끌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김 회장이 생각하는 '시스템경영'을 몸에 익힌 삼성 출신들은 영입 1순위였다.

이명환 부회장을 시작으로 김순환 동부화재 사장,임동일 동부건설 부회장,조영철 동부정보기술 사장,오영환 동부일렉트로닉스 사장,최성래 동부한농 사장 등 그룹 10대 계열사 중 5개 계열사의 CEO가 삼성 출신으로 채워졌다.

또 그룹 전체 임원 180여명 중 3분의 1을 넘는 80여명이 삼성에서 왔다.

이달 중순에는 동부제강 동부일렉트로닉스 동부건설 동부화재 동부생명 등 16개 계열사에서 임원을 포함한 경력직원을 공개 채용키로 했다.

동부그룹은 이 같은 인재영입이 동부의 외형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실제 지난해 동부그룹 전체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재계 11위(공기업 및 포스코 KT 제외)에 올랐다.

또 △소재 △화학 △건설·물류 △금융 △정보기술(IT)·컨설팅 등 5개 사업분야별 '자율경영'시스템도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동부화재의 경우 삼성화재 부사장을 지낸 김순환 사장이 오고나서 매년 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순항하고 있다"면서 "초기에 혼란스런 점도 있었으나 지금은 조직 내부에 혁신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역차별'에 대한 불만도

동부의 인재수혈 정책은 적지 않은 후유증도 낳고 있다.

역차별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새나오고 있다.

단적인 예가 동부한농이다.

이 회사의 상무급 이상 임원 6명은 올해 초 동시에 옷을 벗었다.

동부한농에 영입된 삼성 출신 임원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동부의 한 관계자는 "한번 입사한 직원은 본인이 원치 않는한 정년까지 데리고 있겠다는 게 지금까지 동부의 문화"라며 "최근 외부 영입이 늘어나면서 기존 동부 출신들이 승진 등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룹의 한 직원은 "사원들 사이에서는 '열심히 해봐야 CEO는커녕 임원도 못될텐데 무슨 희망으로 충성을 다하겠느냐'는 푸념도 적지 않다"며 "시스템경영의 조기 이식을 위해 외부 인재를 영입해 오는 것도 좋지만 역차별에 따른 기존 식구들의 사기저하도 충분히 고려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이 같은 부작용과 관련,"체질개선을 하는 게 쉬울 수는 없다"며 "일부 역풍에도 불구하고 '성공 DNA'를 이식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전략은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태웅·이태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