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소설 '어둠의 자식들'은 무작정 상경한 시골처녀가 서울역 앞에서 뻔히 눈뜨고 '탕치기'(인신매매)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데 이동철이라는 분이 직접 겪은 실화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뜨내기 손님은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에 가서 바가지 쓰기 십상이었다.

눈 감으면 코 베가고,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던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유식한 사람들은 그것을 천민자본주의의 추악함으로 치부했지만,기실 그것은 자본주의 이전 전통사회의 잔재였다.

농경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안' 또는 가문이 세상의 전부였다.

같은 가문에 속한 사람은 평생을 같이 지낼 식구지만,다른 가문 사람은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었다.

확대된 집안인 동네나 학교도 비슷했다.

동향이나 동창은 같은 편이지만 지역이나 학교가 달라지면 적이 될 가능성이 컸다.

다른 가문,다른 지역 사람은 등쳐먹어도 별로 양심에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었던 것이 전통사회의 특성이며,그런 특성은 원시 사회로 갈수록 심해진다.

오죽했으면,'쿵산''주니' 등 대부분 원시인들이 자기 종족을 부르는 이름은 '사람'을 뜻하겠는가.

다른 종족은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전통사회의 그런 속성을 잘 이해했기에 소설가 최인호는 '상도'에서 임상옥으로 하여금 믿을 사람 하나 건지면 장사에 성공한 거라고 말하게 했겠는가.

하지만 타인을 믿지 못하면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외롭게 살아야 한다.

남들과 협동을 통해서 먹고 살려면 믿을 만한 사람들을 구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은 혈연인 가족하고 할 때 가장 수익성이 높았고,도시에 올라와서도 지연과 학연이 있는 사람을 찾아 사업 파트너로 삼아야 했다.

경제개발 초기에 대우는 경기고등학교와 연세대상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삼성은 경상도 출신,미원은 전라도 출신 일색이었던 것은 당시 사회의 낮은 신뢰수준을 반영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기업들은 직원들을 모두 '가족'으로 만들려고까지 했다.

대부분 기업들이 회사 이름 뒤에다 '~가족' '~패밀리'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 그 때문이었고,실제로도 회사는 가장처럼 직원의 살림살이까지 챙겨주는 경우가 많았다.

20세기 초반의 미국에서도 한때 포드에 이어서 세계 2위 자동차 기업이었던 오버랜드의 윌리스(J. N. Willys)는 9000명의 영업대리인들에게 가족 의식을 심기 위해 큰 투자를 했다고 한다.

이제 이런 일들이 훨씬 줄었다.

공채만으로도 믿을 만한 사람을 뽑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남의 돈 떼어먹고 달아나면 이제 어디 가서 숨을 곳이 없다.

또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앞으로의 생활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러니 혈연이나 지연,학연이 없는 사람의 돈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떼어먹을 수가 없다.

또 계약을 어기면 과거에 비해 법적인 처벌을 받거나 손해배상을 해야 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한마디로 말해 법의 지배가 강해진 것이다.

친척들 간의 유대가 느슨해지고,동향인·동창들간의 관계가 소원해져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혈연 지연 학연 대신 법의 지배를 통해서 익명의 다수와 믿음의 끈으로 맺어져 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슬퍼할 것은 없다.

그것이 성숙한 시장경제의 모습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KCH@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