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서당에서는 '책거리'라는 것이 있었다.

천자문이나 명심보감 등 책 한 권을 떼고 나면 학동과 학부모들이 모여 글을 가르친 훈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한턱내던 일종의 다과회 행사였다.

음식이래야 떡과 제철에 난 과일,훈장에게 대접할 술 한 됫박이 고작이었다.

이 책거리는 요즘으로 치면 촌지(寸志)였던 셈이다.

말 그대로 촌지는 손가락 한 마디 되는 아주 작은 성의이고 작은 선물이다.

그래서 촌지를 받는 사람은 부담을 안 느끼고 주는 사람 역시 그저 즐겁기만 한 게 촌지인 것이다.

이러한 촌지가 어느샌가 뇌물로 둔갑하면서 여러 문제들이 불거졌다.

어떤 목적을 위해 돈 봉투가 오가고 값 비싼 물건과 상품권이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패와 편법의 대명사격으로 얘기되는 촌지는 사회 곳곳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다.

축하하고 감사해야 할 '스승의 날'에 촌지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겠다며 아예 학교문에 빗장을 걸어놓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모습은 분명 우리 교육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교육부는 촌지와 관련된 징계처분 기준을 마련해 일선 교육청 및 학교에 시달했다.

촌지가 적발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비난을 불식시키려는지,10만원 미만의 의례적인 금품이라도 견책과 감봉처분을 내리도록 했다.

국가청렴위원회가 2004년 마련한 '공무원 금품수수 징계기준'보다 훨씬 엄격하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이 촌지문제가 어디 교사들만의 책임일까 싶다.

자기 아이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학부모들이나 아직도 비리가 용납되는 사회분위기 또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촌지교사 추방에는 누구도 동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초치들이 묵묵히 교단을 지키는 대부분의 교사들을 파렴치범으로 매도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든다.

쌀에 뉘가 많다 해도 쌀이 훨씬 많은 법이다.

촌지 관행을 없앤다고 양심적인 교사들까지 상처를 받아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