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려면 딱 두 가지만 알면 돼.

자기한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그리고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황 회장(천호진)이 불쑥 던진 이 말은 그대로 삼류조폭 병두(조인성)에게 삶의 신조로 정해진다.

황 회장은 병두가 필요한 돈을 지녔고,그는 자신의 걸림돌을 제거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제 병두에게 무자비한 폭력은 '열매(돈)를 얻기 위해 견뎌야 하는 인내'로 간주된다.

유하 감독의 조폭드라마 '비열한 거리'는 성공신화의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욕망의 실체를 파헤친 영화다.

학원폭력을 그린 유 감독의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의 조폭 버전이자 인간의 폭력성을 다룬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조폭세계의 추한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보통 사람'의 가슴 속에 숨어있는 탐욕에도 비수를 들이댄다.

유 감독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전작들에서 발휘한 '능란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영화는 흥행 조폭드라마 '친구'처럼 평범한 시민의 시선으로 조폭 동창생의 범죄세계를 관찰하는 양식을 취했다.

그러나 일반인과 조폭이 선과 악으로 확연히 구분됐던 '친구'와 달리 여기서는 한몸으로 묘사돼 있다.

중심인물인 병두는 가난한 살림살이에 생활비를 대주는 건실한 가장이지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두목을 배반하고,폭력을 거침없이 휘두르는 두 얼굴의 소유자다.

병두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인 민호(남궁민)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박' 조폭영화를 만들기 위해 병두를 배신했다.

그도 병두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영화제작자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두 주인공은 모두 자아를 상실한 채 탐욕에 이끌리는 우리의 단면을 반영한 존재다.

편집양식도 조폭과 보통사람의 경계를 허문다.

피투성이 싸움 장면 뒤에는 달콤한 구애장면이 이어진다.

또한 병두가 동창을 만나 추억에 빠지려는 찰나,싸움터로 호출된다.

이 같은 편집양식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깨질 수밖에 없는 우정에 대한 복선이다.

병두역 조인성은 모처럼 적절한 배역을 맡았다.

"그의 눈은 잘 생겼지만 비열함도 지녔다"는 유 감독의 지적대로 말끔한 외모 속에 감춰진 더러운 욕망을 관객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연기했다.

15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