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유통채널이 할인점 아울렛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패션업체들이 백화점에서 퇴출된 브랜드를 재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로 고가의 고급 브랜드였던 것을 할인점 아울렛 가두점 등에서 판매하는 저가 라인으로 되살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백화점 판매를 통해 명성을 쌓았던 패션 브랜드를 재활용할 경우 신규 브랜드를 론칭할 때 드는 초기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그만큼 제품력을 높이는 데 투자를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오롱패션은 2년간 영업을 중단했던 남성복 브랜드 '스파소'를 올 가을부터 할인점 아울렛 전용으로 재출시한다.

스파소는 1994년부터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던 브랜드였지만 매출이 부진해지자 2004년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10년간이나 백화점에서 유통되며 '고가 브랜드'로 인지도를 확보했던 만큼 할인점 등에서 판매를 재개할 경우 '백화점 브랜드'로서의 후광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코오롱의 판단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할인점 소비자들에게 고급 제품을 싼 값에 구입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브랜드 재판매의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온베이도 비슷한 경우다.

1999년 신성통상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유니온베이는 백화점에서 '잘 나가던'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였다.

하지만 신성통상이 2002년 새 주인을 찾은 뒤 이 브랜드를 할인점과 가두점 전용으로 재활용하고 있는 것.

LG패션이 백화점 중심으로 유통시키던 티피코시는 사업을 중단한 뒤 브랜드를 라이선스 사업에 재활용한 케이스.LG패션은 백화점 사업을 정리한 이후에도 티피코시 상표권을 갖고 있다가,2003년 '유앤드림'이라는 중소 패션업체에 사용권을 팔았다.

유앤드림은 현재 티피코시 브랜드를 프랜차이즈 형태의 대리점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연승어패럴의 클라이드는 2002년 이후 백화점 매장을 정리하고,가두점과 패션전문몰에서 저가 라인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2003년 이랜드그룹으로 넘어간 데코의 여성 캐주얼 아나카프리는 이랜드가 인수하면서 백화점 매장을 정리했다가,최근 가두점과 아울렛쪽으로 재출시했다.

이처럼 패션업체들 사이에서 브랜드 재활용이 유행처럼 번지자 샤트렌 워모 바쏘 등 외환위기 이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브랜드들을 찾아내 상표권을 사들인 다음 재출시하는 경우도 부쩍 늘어났다.

인수 업체는 이들 브랜드가 가진 '왕년의 명성'을 영업에 활용하고 있다.

형지어패럴은 잠자고 있던 논노의 부틱 여성복 브랜드 '샤트렌'을 2005년 1월 인수,중저가 프렌치 캐주얼로 재출시했다.

논노가 운영할 당시 백화점에서 비교적 고가에 팔리던 고급 브랜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소비자가 많아 샤트렌은 많은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5개월 동안 약 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옛 대우그룹 계열사 세계물산의 남성복 '워모'도 대우사태 이후 공중에 붕 떠있던 것을 2001년 중견 수출업체인 '도진물산'이 인수,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재활용 중이다.

2000년대 초반 자금난으로 휘청거리던 SG위카스의 '바쏘'도 가로수닷컴의 자회사인 고려가 넘겨받아 할인점과 아울렛 상권 위주의 저가 라인으로 재편,지난해 69개 점포에서 37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박현숙 샤트렌 마케팅실장은 "신규 브랜드를 샤트렌만큼의 인지도와 친근감을 가진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 동안 100억원가량의 마케팅 비용을 들여야 한다"며 "5억원에 상표권을 사들여 이를 단숨에 해결했으니 20배나 남는 장사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