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경제성장'이란 인구가 증가하면서도 1인 당 소득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을 말한다.

'산업혁명'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전 인류는 주기적으로 빚어지는 기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먹을 것이 많으면 사람들이 일찍 결혼해 자녀를 많이 낳고 먹을 것이 없으면 결혼을 하지 않거나 미루고 자녀수도 줄일 것이다.

(예방적 규제)

맬서스(1766∼1834)는 인류가 이와 같은 자동조절 능력을 결여해 식량 부족을 겪게 되며 결국 질병,기아,전쟁이 닥쳐 간헐적인 인구 급감(적극적 규제)을 초래한다고 했다.

19세기 초 공업화 이전의 사회는 이러한 맬서스적 덫에 갇혀 있었다.

14세기 초,17세기 중엽은 세계적으로 전염병 기승과 인구 위기가 두드러졌던 대표적 시기다.

물질적 생활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즉 1인당 소득과 임금,노동생산성 추정치도 이에 상응해 움직였다.

18세기까지 이 수치는 지속 상승한 것이 아니라 순환적으로 등락하다 19세기 중엽에 와서야 명백히 호전된다.

영국 산업혁명기(1760∼1830년)에 1인당 소득성장률은 서서히 상승했다.

도중에 임금 하락 기간이 있었다.

소비 수준이나 평균 수명,최근에는 생물학적 자료인 연령별 신장기록 등도 생활 수준 측정 자료로 쓰인다.

예컨대 신체발달은 성년이 될 때까지 환경적,사회경제적 요인,그리고 영양섭취에서 기초대사,노동,질병에 따른 소모분을 뺀 '순영양'에 의해 결정지어진다.

발육기의 순영양 부족은 키 성장 시기를 늦춘다.

심하면 성년이 되어도 단신으로 머문다.

따라서 연령별 신장은 특정 인구집단의 평균 영양 상태를 나타내며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이 척도를 이용한다.

산업화 이전 유럽인의 영양 상태는 오랫동안 순환적 부침을 겪었다.

산업사회가 자리를 잡고 공중위생이 개선된 후에야 각 집단의 평균 키가 계속 성장했다.

장기적으로 경제가 좋을 때 인구 증가 때문에 오히려 물질생활 수준이 낮아지곤 했다.

'전반적 위기' 시기였던 17세기 후반 프랑스 군대 기록에서 추정한 성인 남자 평균 신장은 162cm다.

18세기 초에는 호전된 기후조건,농업 생산 덕분에 이들의 평균 키가 12년 만에 약 4cm 커졌다.

이후 신장 수준은 18세기 말까지 유럽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침체했다.

최근에는 유골 연구가 발달해 유럽과 미주대륙 인류의 수천년에 걸친 물질생활과 질병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는 중이다.

이에 따르면 지난 2000년간 적어도 18세기까지는 생물학적 복지가 높아지지 않고 완만히 하락했다.

일단 맬서스의 음울한 진단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인구동태,기후,환경,사회적 불평등이 그 원인일 것이다.

19세기 초 하층민은 1인당 소득이 늘어도 생물학적 복지 수준은 향상되지 않았다.

영국 군인의 신장지표로 판단할 때 사람들의 순영양 상태는 1760∼1820년에 향상되었고 이후 약 반 세기 동안 악화했다.

학자들은 1820년 이후 실질임금이 올랐다면 이는 노동강도에 따른 신체적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한다.

소득 수준은 높아지되 도시생활이 비위생적이어서 신체발달에 지장이 있었을 수도 있다.

1820년 이전 상황에 대해서도 반론이 없지 않다.

호주로 유형(流刑)된 범죄자의 키는 1770∼1815년 사이 계속 작아졌다.

1795∼1820년 동안 잉글랜드 여성의 신장 하락 속도는 남성이나 아일랜드 여성에 비해 빨랐다.

요컨대 영국 산업혁명기 생물학적 생활 수준은 비관적이었다.

유럽 후발공업국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19세기 전반 독일 작센지방 군인의 신장은 30년간 6cm 낮아졌다.

미국에서도 초기 공업화가 진행 중이던 19세기 초와 공업화가 확산되고 도시 인구밀도가 높아지던 19세기 말에 평균 신장이 감소했다.

한국에서도 신장 기록 분석이 축적되고 있다.

학적부나 문교부 학생 신체검사,징병검사,의료보험 관련 진단기록,산업자원부 표준원 조사 결과가 있다.

1900년대에 출생한 남성보다 1920년대 중반까지 출생한 남성의 평균 신장이 약 2cm 크다.

또 1920년대 중반 출생 남자보다 1945년까지 출생한 남자의 키는 약 1.5cm 작았다.

전자는 각종 '위생통제기구'의 효과,후자는 1인당 식품 소비의 정체,통제경제 체제와 전쟁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 박순영 교수의 최근 탈북자 체격 분석에 따르면 북한 어린이의 키와 몸무게가 남한 어린이의 하위 5%에도 못 미친다.

60대 남자의 신장은 164cm로 남북한이 비슷하나 20대 초반은 171cm와 165cm로 6cm 정도 차이가 난다.

기술 진보와 공업화,공중위생은 인류를 그토록 오래 가뒀던 맬서스의 덫에서 벗어나게 했다.

수확체감을 극복하고 순영양과 건강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게 했다.

이와 더불어 다산다사에서 소산소사로의 인구변천을 낳았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출산율 급감과 비만 현상은 '덫'에서 풀려난 반작용의 소산이 아닐까.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