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사망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백신 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로 '아시아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그는 끈기와 실력으로 국제기구 수장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경복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 총장은 대학시절 내내 경기도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위해 봉사 진료를 했으며 1976년 의대 졸업 후 춘천의료원 의사 등을 거쳐 1983년 남태평양 피지에서 한센병 관리 책임자로 일하면서 WHO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후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 한센병 자문관(1983~92년) 및 질병예방·관리국장(1991~94년)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1994∼98년) △본부 결핵국장(2000∼2003년) 등 WHO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2003년 7월 5년 임기의 사무총장직에 올랐다.

특히 1995년 WHO 백신국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소아마비 유병률을 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낮춰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으로부터 '백신의 황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 총장이 이끈 WHO는 연간 예산 22억달러(약 2조6400억원),전문직원이 5000여명에 이르는 유엔 산하 최대 국제기구로 에이즈와 결핵 등 질병의 퇴치와 예방,세계 각국의 보건통계 및 보건의료 행정 지원 등 그야말로 세계인의 건강과 복지 관련 일을 도맡아 총괄하는 조직이다.

그는 특히 재임 중 전 세계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유행을 막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왔다.

한국에는 북한 영유아 지원을 위한 2500만달러의 지원 계약을 통일부와 맺기 위해 지난 3월 마지막 방한했다.

유족으로는 대학시절 한센병 봉사 진료 때 만나 결혼한 일본인 동갑내기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와 외아들 충호씨(28·미 코넬대 전기공학 박사과정)가 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역임한 종오씨(58·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와 종구씨(52·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이 총장의 동생이다.

이 총장의 장례식은 WHO가 주관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장의 누나인 이종원씨는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면서 "WHO가 장례식을 주관하고 싶어하는 만큼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 총장의 급서 소식이 전해지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 지도자들은 긴급 성명을 발표하면서 애도했다.

중국을 방문 중인 아난 총장은 "이 총장이 돌연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몹시 슬프다"며 "그는 WHO 직원들에게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안타까워했다.

니컬러스 손 유엔 주재 영국대사는 "그가 떠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이며 모두들 비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리빗 미국 보건부 장관은 "고인은 협력의 정신을 구현했던 인물이었다"며 이 총장의 공로를 평가했다.

WHO는 이 총장의 타계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 웹 주소(DrLee-tribute@who.int)를 마련했으며 유엔 유럽본부는 고인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출입문 입구의 만국기를 조기로 게양했다.

이 총장의 국내 분향소는 서울대 의대 구내 동창회관 1층에 마련됐다.

(02)762-9465

박수진·장경영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