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원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얼마 전 있었던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15년에 추징금 23조원이라는 구형을 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구형은 사실상 종신형과 마찬가지며,추징금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한편 이번 기회에 분식회계 등의 불투명한 방법으로 기업 성장을 도모하는 과거의 관행을 일벌백계로 응징하겠다는 검찰의 의지 역시 일부 공감을 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 회장에 대한 막연한 동정심과 함께 과연 김 회장이 그렇게 가혹한 형을 받을 만큼 한국경제에 큰 피해를 입혔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검찰은 김 회장이 분식회계 등의 방법으로 기업을 부실화했으며,그 결과 3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한다.

이는 물론 사실에 기초한 주장이며,필자 역시 김 회장의 분식회계 지시 사실을 비호하고 이로 인한 공적자금의 투입을 부정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과연 검찰의 주장대로 김 회장의 처신이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새삼스럽게 숫자놀음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30조원의 공적자금이 전적으로 대우사태로 인한 투입이었는지 의문이다.

특히 예금보험공사에서 대우채로 인한 금융회사의 손실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투입한 17조원의 경우,대우채에 의한 손실을 메울 뿐 아니라 전반적인 금융회사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투입이었다.

그러므로 이 금액이 모두 대우사태로 인한 투입금액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더욱이 자산관리공사에서 대우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투입한 13조원의 경우 이미 그 회수가 시작됐다.

여기에 현재 채권단 등에서 지니고 있는 과거 대우계열 5개사 주식의 현시세 및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평가할 경우 최대 35조원 이상을 채권단이 회수할 수 있다는 추정이 있다.

이럴 경우 가까운 장래에 대우사태로 인한 공적자금은 선진국에서도 그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100% 이상의 회수 실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 회장과 대우가 한국경제에 남긴 무형의 자산이며,이는 사실상 공적자금 투입액 30조원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과거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시기에 김 회장은 젊은 기업인들의 우상이었으며,많은 젊은이들이 김 회장의 뒤를 좇아 세계시장의 개척이라는 험난한 길로 용기 있게 뛰어들었다.

대우를 필두로 한 이들 젊은 사업가들은 선진국과 오지의 시장을 뚫기 위해 땀과 눈물,심지어는 목숨까지도 희생하며 수출입국을 통해 한국경제의 오늘을 만들어 왔다.

일부에서는 김 회장의 이러한 역할이 과거의 것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 회장이 일군 대우라는 브랜드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으며,이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힘든 한국경제의 자산이 될 것이다.

특히 대우는 김 회장의 지시로 일찍부터 동구 및 중앙아시아,그리고 중국 인도 베트남 등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개도국에 일찍부터 진출했다.

이러한 진출은 김 회장 개인의 주도적 역할로 이뤄진 것이 사실이며 김 회장의 노력은 이들 국가에 '대우'와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런 점에서 김 회장이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검찰의 주장은 아무래도 부적절해 보인다.

이보다는 '분식회계로 30조원의 공적자금의 투입을 초래했으나 국가발전과 국민경제에 기여한 유무형의 공로가 적지 않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 회장에 대한 구형은 지나치게 가혹할 뿐만 아니라,자칫 과거 한국경제의 성장패턴을 부정하며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킬 수 있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