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강상(江上)유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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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으로나 가겠다
제일 마음 가난한 사람 하나와
곁에 초라한 나를 세워
그를 위해서
세월의 강물 건너가는 그림자로
얼굴도 팔도 하나가 된
이제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나를 찾으러
제일 아름다운 사람 하나와
가다가 나는 없어지고
그 사람만 남게 해
이 해 뜨고 해 지는 세상에서
그 사람 제일 가슴 아프게 만들어
혼자 이물에 세워놓고
나의 깨끗한 친구 어깨 옷이여
바람보다 슬픈 마음으로나
간다면 온다면
그를 데리고 만사 접어두고
그냥 유람으로만 간다면
-고형렬 '강상(江上)유람이라면'전문
유구한 세월에서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은 잔혹한 것이다.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도 따지고 보면 '유한한 삶'에 대한 저항과 순응의 흔적이 아닌가.
옛 제왕들의 거대한 무덤들도 영원을 희구하던 애처로운 몸짓일 뿐이다.
어떻든,우리는 스러질 존재다.
그렇다면 제일 아름다운 사람과 가다가 없어지고 싶다고 시인은 말한다.
짧은 삶에 절망하기 보다는 만사 접어두고 그와 함께 유람하듯 살고 싶다는 고백이다.
찰나에 불과한 삶인데,시비하고 분노하고 불평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