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A고등학교는 해마다 30~40명 이상의 학생이 해외로 떠난다.

전교생이 1200여명인 이 학교의 경우 학기 초 어느 학급에 들어가도 하나 둘쯤 비어 있는 책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조기유학을 결정한 학생들이 남긴 흔적이다.

청와대 옆에 있는 B중학교는 평창동 부암동 등 소위 '부촌' 학생들이 많아 연간 20명이 '탈한국' 대열에 합류한다.

학교 관계자는 "인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학교에 배정된 뒤 입학하지 않는 학생이 꽤 된다"며 "학부모 등을 상대로 몇 차례나 출석 독촉을 한 끝에 가까스로 연락이 닿으면 '이미 국내에 없다'는 답변을 받기 일쑤"라고 말했다.

더 나은 교육 여건을 찾아 해외로 떠나려는 '교육 엑소더스'가 중산층 이상 학생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초·중학생의 조기유학 급증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서울시 교육청이 11일 발표한 서울지역 초·중·고교생의 조기유학자 통계를 보면 2005학년도에는 조기유학생 수가 7000명을 넘어섰다.

전국적으로는 1만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산된다.

○영어권 국가가 역시 인기

눈에 띄는 점은 조기유학 대상자들의 연령이 점차 어려지고 국가도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국내 공교육을 믿을 수 없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05학년도 조기유학 대상자를 분석해 보면 각급 학교별로 초등학생이 전년도 2128명에서 2453명으로 15.3%,중학생이 2133명에서 2521명으로 18.2%,고교생이 1828명에서 2027명으로 10.9%씩 각각 증가했다.

부유층이 많은 사는 지역일수록 조기유학자도 늘어난다.

서울시 교육청은 위화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어 지역별 해외 유학자 수치를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사교육 열풍이 거센 강남과 목동 지역의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조기유학 대상 국가도 다양해지고 있다.

2005학년도를 기준으로 가장 선호하는 나라는 역시 미국(2575명)과 캐나다(1106명) 등 북미 영어권 국가.

그러나 상급 학교로 올라갈수록 중국(902명)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아졌고 비교적 비용이 저렴한 필리핀 등 동남아(656명)국가나 뉴질랜드(312명),호주(268명) 등 대양주로 떠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명문교 노리는'귀국파'많아

조기 해외유학의 주 원인은 일단 자유롭게 외국어를 구사하려면 어린 나이에 나가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일정 기간 해외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낸 후 돌아오면 외국어고등학교나 자립형사립고 등 특목고에 입학하거나 명문대 특례입학전형을 활용하기가 수월해진다는 점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말 초등학교 5학년생 자녀를 캐나다로 유학보낸 김 모씨(41·서울 양천구 목동)는 "사회적으로 조기유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알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결정했다"며 "현지에서 굳이 대학을 다니지 않더라도 향후 돌아와서 여러 모로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YBM유학개발원의 복현규 원장은 "미국 현지 명문사립고와 명문대학 진학을 노리고 장기 유학에 나서는 것은 '천재' 소리를 듣는 일부 최상위권 학생 정도"라며 "조기유학생의 대부분은 외국어에 익숙해지면 귀국한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고려대의 경우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재외국민 특별전형(정원외 2%)의 경쟁률이 최근 들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6.90 대 1이었던 경쟁률은 2006년 입시에서는 24.13 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