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환경 그린팔렛(물류운반재) 김포 공장에서 근무하는 변정철 주임(38)은 평일인 지난 8,9일 이틀간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아내와 함께 세 살,두 살짜리 아이들을 돌보며 휴식을 즐겼다.

변 주임은 휴가를 내서 쉰 것이 아니었다.

회사가 올 초부터 본격 시행한 '뉴 패러다임 경영모델'에 따른 이틀간의 연휴였다.

이건환경은 작년까지만 해도 2조2교대로 근무했다.

하지만 올 들어 3조2교대로 바뀌었다.

각 조별로 '4일 근무(주간)→2일 휴식→4일 근무(야간)→1일 휴식→1일 교육' 식으로 돌아간다.

12일에 사흘을 쉬는 셈이다.

변 주임이 맡고 있는 생산B조의 경우 지난달 14일이 '교육받는 날'이었다.

이 날의 교육 프로그램은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공작기계전' 관람.변 주임은 생산B조 직원들과 함께 평소 관심 있던 선반기계 등 각종 첨단 공작기계들을 하루종일 둘러봤다.

이처럼 근무 시스템이 바뀌면서 이건환경 직원들의 생활도 확 달라졌다.

우선 여가 시간이 늘어났다.

변 주임의 동료인 생산A조 신동진 반장은 쉬는 날이면 부인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가게로 간다.

신 반장은 "아내의 사업을 그동안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었다"며 "요즘은 휴일이면 아내의 일을 이것저것 거든다"고 말했다.

회사 전체적으로 보면 생산직 직원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72시간에서 56시간으로 22%가량 줄어들었다.

반면 임금은 잔업 시간이 줄어들면서 총액 기준으로 5% 정도 감소했다.

조덕호 생산팀장은 "도입 초기에는 임금이 줄어든 데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여가 생활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다들 새로운 근무 시스템에 만족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생산 조가 명확히 나눠져 조 단위로 근무하고 교육받다 보니 조별 책임감이 높아져 불량률도 감소하고 분임조 활동도 활발해졌다"고 덧붙였다.

'뉴 패러다임 모델'은 근로자의 근무여건 개선 외에도 생산성 향상,평생 학습체제 구축 등 '1석 3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

생산성 향상은 설비 가동률 제고로 나타난다.

이건환경은 그동안 정비를 위해 7일에 한 차례씩 24시간 설비 가동을 멈췄었다.

현재는 9일에 한 차례 12시간만 가동을 중지한다.

연간으로 따지면 설비 가동일수가 300일에서 330일로 늘어난 셈이다.

이는 생산량 증가로 이어진다.

올 1분기 그린팔렛 생산량은 27만6305장으로 작년 같은 기간(24만6305장)에 비해 12.14% 증가했다.

물론 3조2교대 시행을 위해 인력이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김포 공장의 경우 과거 19명이던 생산직을 24명으로 늘려 8명씩 3개조를 편성했다.

박성식 이건환경 이사는 "추가 고용으로 인건비는 소폭 늘었지만 생산량이 10% 이상 증가해 제조 원가는 거의 비슷하다"며 "생산량이 늘어나는 만큼 이익 규모가 커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생산량 증가 외에 근로자에 대한 교육 시간이 늘어난 점을 새 경영모델의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직무 및 기계 설비에 대한 교육 시간이 늘어나면서 설비 정비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되는 등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앞으로 직원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박 이사는 "규모가 작은 중소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2조2교대나 3조3교대로 근무조를 운영,근로자들이 주당 60~70시간씩 작업하고 있다"며 "생산량 증가에 따른 판로가 확보돼 있고 설비가 자동화돼 제조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업체들이라면 뉴패러다임 모델을 도입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건환경은 종합 목재회사인 이건산업에서 물류 사업과 조경사업 부문이 분리돼 작년 10월 설립됐으며 폐목재를 재활용해 만드는 그린팔렛과 각종 친환경 조경재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27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해 32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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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패러다임 모델은 ]

뉴패러다임 모델은 기업이 노동자의 근무 시간을 줄이는 대신 교육 시간을 늘려 생산성 향상과 노사 화합을 추구하고 고용도 창출하는 기업과 노동자,사회의 '3자 상생경영 모델'이다.

이 모델을 도입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신규 고용을 통해 교대 근무조를 기존 '2조2교대'나 '3조3교대'에서 '3조2교대'나 '4조3교대'로 늘리고 근로자들의 평생학습체제 구축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내에서는 1993년 유한킴벌리가 4조 근무제를 채택하고 직장 내 평생학습 체제를 구축한 것이 뉴패러다임 모델의 효시다.

2004년 3월 한국노동연구원 산하에 뉴패러다임센터가 개설돼 뉴패러다임 컨설팅 시범 사업을 하면서 이 모델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현재 하나코비 두산 풀무원 동명식품 등 76개 기업이 이 모델을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